매키 교수 “좋은 이야기의 조건? 하나만 꼽자면 공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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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 대가’ 로버트 매키 교수-최광식 문화부 장관 대담

로버트 매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왼쪽)가 가수 싸이의 성공 요인에 대해 “코믹과
섹시가 합쳐진 독특함”이라고 설명하자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맞장구를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로버트 매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왼쪽)가 가수 싸이의 성공 요인에 대해 “코믹과 섹시가 합쳐진 독특함”이라고 설명하자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맞장구를 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수천 편은 봤을 겁니다. 대부분 톰 크루즈 같이 멋지게 생긴 주인공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외모만큼이나 멋지게 괴수와 싸웁니다. 그런데 ‘그’ 영화(‘괴물’)는 달랐어요. 모든 면에서 허술하고 엉망진창인 가족들이 괴물과 맞서죠. 하하.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대가로 통하는 로버트 매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71)의 말. 그는 미국에서 스토리텔링의 ‘구루’(영적인 스승)로 불린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출한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은 매키의 스토리 구성 원칙에 따라 편집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 그가 11월 2일까지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리는 스토리텔링 세미나(문의 02-564-6922)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두가헌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9)과 매키 교수가 만났다.

최 장관은 평소 한국 고대사의 신화와 설화에서 좋은 이야기를 찾아 문화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며 스토리텔링을 강조해 왔다. 매키 교수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거듭 칭찬하자 최 장관은 “좋은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라고 되물었다.

○ 좋은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공감

“어려운 질문이에요. 음….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너무 많고 복잡해서요. 굳이 하나만 꼽자면 ‘공감(sympathy)’입니다. 소설, 영화, 드라마 속 인물을 보며 ‘나랑 다르지 않구나’라고 공감하는 순간 청중은 스토리 속 인생을 간접 경험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 인생이 더 심화되고 풍부해집니다.”(매키 교수)

최근 영화와 드라마 등 문화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좋은 이야기 창작에 대한 중요성도 커졌다. 최 장관이 “스토리 하면 히스토리(history)가 생각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처럼 과거 소재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말하자 매키 교수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토리텔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영화를 25∼30편 봤을 겁니다. 천재적인 작품들이 있었어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좋아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도 인상적이었어요. 제 친구는 드라마 ‘여인천하’도 좋아해요(웃음).”(매키 교수)

○ 한류 콘텐츠의 성공 비법은?

이들은 한류 콘텐츠의 힘을 영미 중심의 세계 주류 대중문화와의 차별성에서 찾았다.

“중국인들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자국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가족애를 느낍니다. ‘겨울연가’는 일본 사회에서 없어진 순애보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어요.”(최 장관)

“‘싸이’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그는 정말 웃깁니다. 그러면서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허리 돌리기 춤이나, 프린스의 이성과 동성이 섞인 매력처럼 독특한 성적 에너지가 꿈틀거려요. 아, 한류 콘텐츠의 힘은 독특함뿐만이 아닙니다. 좋은 이야기를 좋은 배우, 제작자, 감독들이 작품으로 잘 만든다는 겁니다.”(매키 교수)

최 장관이 “‘강남스타일’에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 작품에 흐르는 풍자와 해학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자 매키 교수는 “한류 성공을 이어가려면 한국에 좋은 스토리텔러가 많아야 한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대화 중 “스토리텔링은 상품일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매키 교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많은 이들이 영화 산업에 뛰어들지만 스토리에 대한 사랑이 없어요. 대부분 부와 명예를 생각할 뿐 자기 내면의 예술을 사랑하진 않아요. 스스로 ‘내 이야기를 아무도 안 읽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이 안 돼도 계속 쓸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예스’라고 답한다면 대성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창작자가 많아야 해요.”(매키 교수)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로버트 매키#스토리텔링#최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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