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보다 붉고 난향보다 진한 漢詩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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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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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회 맞은 학-재계 원로들의 한시 모임 ‘난사’

19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식당에서 250회 ‘난사’ 모임이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종훈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조순 전 경제부총리,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이헌조 LG전자 고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9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식당에서 250회 ‘난사’ 모임이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종훈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조순 전 경제부총리,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이헌조 LG전자 고문,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저녁노을이 붉게 타올라 탐낼 만하오./그림자 외로운 새가 연기 속으로 날아 들어가더라./나뭇잎 떨어진 숲을 천천히 걸으며 좋은 시구를 생각하고/이따금 오래된 절에 들어가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노라….”

이헌조 LG전자 고문(80)이 지어온 한시를 우리말로 풀어 낭독하자 여기저기서 “캬∼ 좋다!”, “당시(唐詩)가 울고 가게 생겼어”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학계와 재계의 원로들이 매달 한 차례씩 모여 직접 지어온 한시를 나누는 모임 ‘난사(蘭社)’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한식당에서 250회 모임을 가졌다. 1983년 10월 27일 첫 모임을 한 지 29년 만이다.

이날 모임에는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87·한국사),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86·영문학·시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84), 김용직 서울대 명예교수(80·국문학), 이종훈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77)이 참석했다. 현재 7명의 회원 중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명예회장(79)만 개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난사는 1983년 10월 고 김호길 전 포항공대 학장이 경북 안동의 고향집으로 이우성 교수와 이헌조 고문 등 지인 5명을 초대한 일을 계기로 결성됐다. 회원이 한때 11명까지 늘었지만 김호길 전 학장,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 유혁인 전 공보처 장관, 김동한 전 대한토목학회장이 별세해 지금은 7명이다.

이우성 교수는 “난초처럼 맑은 향기를 나누자는 뜻에서 난사라 이름 지었는데, 친구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모임을 중단할 수 없어 꾸준히 이어온 게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고 말했다.

난사에서의 인연은 실학연구단체인 재단법인 실시학사(實是學舍)로 이어졌다. 1990년 이우성 교수가 만든 실시학사에 2010년 이헌조 고문이 사재 70억 원을 기부하면서 재단법인으로 출범했고, 이종훈 전 사장이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헌조 고문은 “기업을 운영할 때 이익을 얼마나 내느냐를 매일 고민했는데 한시를 지을 때만큼은 온전히 마음을 비우고 좋은 시간을 즐겼다”며 “이런 좋은 모임 덕분에 기업 일을 큰 탈 없이 마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순 전 부총리는 “한시를 알면 고려, 신라의 시는 물론이고 3000년 된 중국 시까지 공감할 수 있어 ‘사람의 폭’을 넓혀준다”고 강조했다.

난사는 올해 말 회원들의 한시 800여 수를 담아 250회 기념 시집을 출간한다. 이우성 교수, 이헌조 고문, 김용직 교수, 김종길 교수의 개인 시집도 다음 달 나올 예정이다.

신성미 기자savoring@donga.com
#한시#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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