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디자이너 “저급과 고급 디자인 충돌시켜 맛깔난 ‘분식토랑’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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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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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전문점 ‘플레이팟’ 설계한 임태희 디자이너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임태희 씨가 디자인한 ‘분식토랑’ 플레이팟의 내부. 주 메뉴인 떡볶이가 길거리 음식이라는 점에 착안해 포장마차용 타폴린을 실내 천장에 설치했다. 노란색과 흰색 타폴린 덕분에 분위기가 가볍고 떠들썩해졌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임태희 씨가 디자인한 ‘분식토랑’ 플레이팟의 내부. 주 메뉴인 떡볶이가 길거리 음식이라는 점에 착안해 포장마차용 타폴린을 실내 천장에 설치했다. 노란색과 흰색 타폴린 덕분에 분위기가 가볍고 떠들썩해졌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임태희 ‘임태희 디자인스튜디오’ 대표(40). 그는 올봄 이색적인 주문을 받았다. “슈퍼 럭셔리 떡볶이집을 디자인해 주세요.” 서민용 분식의 대명사인 떡볶이를 호텔 주방장 출신 ‘셰프’들이 ‘요리급’으로 만들어 내놓는 식당을 개업할 테니 실내 디자인을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이 ‘저렴한’ 일거리에 처음엔 황당했지만 곧 흥분되기 시작했다. “저급과 고급이 충돌할 때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싸고 저급한 디자인과 비싸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무수히 많은 디자인이 있다고 믿거든요.”

임 대표는 일명 ‘분식토랑(분식+레스토랑)’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떡볶이가 거리 분식이라는 점에 착안해 ‘포장마차’ 이미지를 끌어들였다. 포장마차에 사용되는 방수포가 ‘타폴린’이다. 임 대표는 빛을 투과하는 노란색과 흰색 타폴린을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 가게 앞쪽과 실내 천장에 설치했다. 콘크리트 바닥 위의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노상에 천막을 치고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노란색과 흰색 페인트를 칠해 실내 한쪽에 세워놓은 로드사인이 ‘바깥’ 분위기를 더한다. 실내 벽면 수납장 앞쪽엔 흰색 타폴린에 지퍼를 달아 놓았다. 이것 역시 포장마차의 지퍼 문에서 따온 것이다.

“실내외 구분을 흐릿하게 해 실내가 바깥처럼 보이도록 한 거죠.” 그의 말대로 포장마차 안이 ‘안’이면서도 건물 ‘밖’ 거리라는 특징을 살린 디자인이란 느낌이다. 실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훈련받은 학력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것일까. 임 대표는 덕성여대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업에 종사하는 사이사이 두 차례 일본에 가서 교토대 건축학 연구생 과정을 마치고 교토공예섬유대에서 건축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분식토랑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6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 먹자골목에 77.62m²(약 23.5평) 규모로 문을 연 ‘플레이팟(Play Pot)’이다. 일부러 ‘싼티’를 낸 식당에서 유일하게 싼티가 나지 않는 곳이 주방이다. 셰프 차림의 ‘셰프’들이 주문을 받는 대로 깊은 냄비(pot)를 달궈 불 맛 나는 음식을 요리해 세련된 접시에 담아낸다. 가장 싼 ‘기리기리볶이’가 4000원, ‘커리크림 떡볶이’ 6000원, ‘까르보나라 떡볶이’는 6500원이다.

임태희 디자이너.
임태희 디자이너.
“디자인은 돈이 많아야만 향유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디자인을 즐길 권리가 있죠. 디자인은 우아하고 비싼 게 아니라 즐겁고 싼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이 분식토랑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해외 디자인 전문 웹진들도 잇달아 플레이팟을 소개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트렌드 사이트인 ‘트렌드헌터’는 “이 현대적 스낵 카페는 특이한 디테일과 시선을 사로잡는 미학으로 가득 차 있다”고, 영국의 ‘디진’은 “플레이팟은 향수와 친숙함을 자극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재창조하는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분식토랑#플레이팟#임태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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