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민미술관의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전은 강력한 문화적 형식인 광고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전시다. 연구와 자료를 기반으로 한 전시에선 현대 광고가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식을 8개의 주제로 나누어 조명했다. ‘섹슈얼리티’를 다룬 공간에 나온 신경진 씨의 영상과 오브제 작품.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광고를 뜻하는 말로 이 땅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고백’이었다. 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에 ‘덕상 세창양행 고백’이란 제목으로 독일 상사(商社)의 광고가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로 등장한 것이다. 솔직함을 앞세운 ‘고백’이란 말은 10년 후 독립신문이 창간되면서 널리 알린다는 의미를 강조한 ‘광고’로 바뀐다. 이후 ‘별을 따왔어도 광고 안 하면 모른다’(1936년 조선중앙일보 약 광고)는 문구처럼 광고의 중요성은 광고주와 대중에게 빠르게 각인된다.
한국 광고사의 흐름을 훑어보면서 광고와 현대미술의 시각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우리의 의식과 정신세계를 탐문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전이다. 광고만 조명하거나, 광고를 차용한 미술작품을 단순히 엮어낸 전시와 달리, 서로 다른 장르의 화학적 융합을 모색하면서 풍부한 자료와 연구를 기반으로 사회문화적, 인문학적 접근을 모색한 자리다.
전시를 기획한 김태령 관장은 “현대 소비문화에 대한 고백 혹은 광고를 매개로 현대사회와 대중의 가치관을 읽고자 한 시도”라며 “한데 뭉뚱그리기 힘든 영역을 모은 통섭의 전시”라고 말했다. 본보 오피니언면에 ‘김병희의 광고 TALK’를 연재 중인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가 기획 자문으로, 작가들이 디스플레이에 참여했다. 광고, 미술과 더불어 논문과 연구자료, 이론적 내용까지 많은 내용을 압축적으로 버무린 전시여서 꼼꼼히 볼수록 많은 것을 챙길 수 있다. 8월 19일까지. 1000∼2000원. 02-2020-2050
○ 흘러간 광고 속으로
1층에는 광고사적 의미와 디자인 가치를 중심으로 선별된 광고들이 빽빽하다. 1914년 11월 8일 매일신보에 한복 입은 여인이 당당히 담배를 피우는 파격적 이미지가 실렸다. 담배회사 건물의 신축 낙성을 축하하는 광고였다. ‘광고를 그만둔다-세상이 이 탈모 예방법을 묵살할 지경이면!’ 1930년대의 한 광고는 좋은 포마드(남자용 머릿기름)를 만들었는데 이를 몰라준다면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재기발랄한 문구로 승부수를 던졌다.
근대광고 태동기부터 일제강점기 경제성장기를 거쳐 한국광고 120년을 돌아보는 전시는 광고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흥미롭다, 이영애 김태희 김연아에 앞서 1930년대에도 빅 모델이 존재했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현대무용가 최승희가 안약광고에 등장한 것이다. 1920∼40년대 근대 광고의 성숙기엔 식민지 조선인에게 근대에 대한 환상을 제시하는 광고가 이어졌다. 맥주 같은 기호품, 서구적 이목구비를 표준으로 제시한 화장품, 영화 약 조미료 등의 광고다.
교과서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새로 포장한 1970년대 ‘형님 먼저 아우 먼저’의 라면 광고,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라는 문구로 제자에게 도시락을 내주었던 스승의 이야기를 담은 1980년대 기업광고 등. 한국인의 감성을 담은 광고를 통해 시대를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오늘의 소비문화 속으로
한국적 감성을 녹여낸 1980년대 기업 광고. 일민미술관 제공2, 3층에선 다양한 미술작업에 전시연출의 새로운 시도가 어우러진다. 현대광고를 관통하는 주제를 성공, 미래, 신뢰 등 8개로 분류한 뒤 난다 김신혜 조경란 등 상품과 연계된 작업을 한 작가들과, 권경환 신경진 김현준 등 관련 주제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작가들을 색다른 구성으로 선보였다. 미술관 측과 작가 윤사비, 이완, 디자인회사 워크룸의 협업으로 완성된 전시 디자인 자체가 큰 틀의 작품인데 건축도면부터 조각, 회화를 겹겹이 배치한 3층 공간이 인상적이다.
청소년에겐 특정 회사 로고가 박힌 점퍼가, 젊은층에겐 브랜드를 부각한 커피잔이, 중년 세대에겐 알쏭달쏭한 이름의 아파트가 각 개인의 기호와 성향, 정체성을 파악하는 기준으로 등장했다. 소비는 상품이 아닌 브랜드를 구입하는 행위가 된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소비를 주목한 전시는 그 욕망이 빚어낸 우리들 모습을 ‘생얼’로 비춘다.
‘우리가 호흡하며 살고 있는 이 대기 속은 산소와 질소 그리고 광고로 이루어졌다.’(로벨 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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