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용맹무쌍한 두 특공대원의 ‘가슴속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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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 앓는 지안아 힘내!… 딸 태어나는 모습 볼 수 있을까

16일 오전 9시 반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다섯 사나이가 연평도행 여객선에 묵묵히 몸을 실었다. 원래는 하루 전 떠났어야 했지만 기상 악화 탓에 배가 뜨지 않았다. 이들이 함께 연평도에 들어가는 건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일이다. 특별할 것 없는 임무다. 그런데 이날따라 유독 발걸음이 무겁다. 평소 같았으면 갑판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싱거운 농담도 주고받았을 텐데…. 한 명이 불안한 듯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리자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걱정 말라”며 안심시킨다. 정작 자신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면서 말이다. 연평도까지는 배로 세 시간 거리. 거리도 거리지만 연평도에 머물러야 할 일주일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초조함이 어우러진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 “지안아 조금만 더 힘내자!”

곽일호 경사(33)는 다섯 남자의 리더다. 인천해양경찰특공대의 전술2반장이 그의 직함이다. 비상작전이 걸리거나 특수임무를 수행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팀원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그는 힘든 티를 내지 않는다.

“우리 팀 분위기가 제일 좋아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이 일 재미있습니다. 총 쏘고, 수영하고, 보트 타고,…. 생활자체가 레저잖아요.”

늘 이런 식이다. 그런 곽 경사가 지금 아프다. 정확히는 그의 큰아이가 투병 중이다. 2004년 경찰이 된 곽 경사는 임용 동기인 정준희 씨(31)와 경찰종합학교 신임교육장에서 만나 2007년 결혼했다. ‘체력 짱’인 아빠 엄마를 둔 지안 군(4)이기에 누구도 건강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난해 초여름 계속 기침을 하고 감기 기운이 떠나지 않을 때도 주사 맞고 약 먹으면 나을 줄 알았다. 개인병원 4곳을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야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낯선 이름의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그 나이에 발병된 사례가 거의 없는 병이라고 했다.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인천해경특공대 동료들도 얼마 후 소식을 들었다. 행정처리를 맡은 경무계 동료가 먼저 사정을 알게 된 것이다. 동료라고 해야 40명 정도인데 헌혈증서 100장이 넘게 모였다. 한 동료는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혼자 20여 장을 모아주기도 했다. 싫다는 곽 경사 손에 몇 만 원이 든 봉투를 굳이 쥐여주는 선배도 있었다. 곽 경사는 “참 힘들었던 때인데 동료들의 위로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날은 전술2반의 일주일 연평도 근무가 시작된 날이다. 며칠씩 가족과 떨어지는 게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곽 경사는 최근 들어 부쩍 지안이가 신경 쓰인다. 아이는 그 조그만 몸을 침대에 뉘여 너덧 시간 동안 수혈을 받아야 겨우 2주일을 버텨낸다. 그러곤 또다시 수혈을 받는다. 잠시라도 집을 떠날 때면 아픈 아들이 계속 눈에 밟힌다. 지안이에다 6월이면 첫돌이 되는 둘째 태민이까지 돌봐야 하는 아내도 안쓰럽다.

골수이식 지원자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올 초 일본에서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지만, 그가 거부하는 바람에 희망은 수포로 돌아갔다. 올해 말까지 일치자를 찾지 못하면, 서울아산병원에서 최근 성공했다는 ‘반(半)일치 골수이식법’(유전자가 반만 일치하는 부모 자식 간에도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수 있도록 항암제 양을 조절하는 치료법)을 받아볼 작정이다.

“큰애가 감염에 약하고 쉽게 지쳐서 바깥활동을 잘 못합니다. 아빠라도 많이 놀아줘야 하는데 이렇게 작전 때문에 며칠씩 못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니 많이 미안하죠. 그래도 아이 성격이 참 밝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 “행복아 조금만 더 기다려!”

가족 생각에 누구보다 초조해할 곽 경사가 위로를 건넨 이는 소향영 경장(36)이다. 소 경장의 아내 황명순 씨(35·교사)가 다음 주 초 둘째딸 ‘행복이’(태명)를 출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언제 아이가 태어날지 모르는 마당에 일주일씩 집을 비워야 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곽 경사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후배인 이광무 경장(30), 김인수 순경(32), 박원규 순경(32)도 마찬가지다. 소 경장이 말한다.

“특공대는 한 식구입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다 읽어내죠.”

이들의 인천 복귀일은 화요일인 22일이다. 행복이의 출산예정일은 월요일. 만약 이때까지 산통이 없으면 유도분만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소 경장은 출산에 맞춰 꼭 돌아오겠다고 아내에게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첫째 은비(4)가 태어났을 땐 목포해양경찰서 해양구조대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당시 아내는 전주에 머물고 있어 연락을 받은 뒤 3시간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가야 했다. 그때보다 걱정되는 건 바다다. 연평도에서 인천까지는 배가 하루에 한 번뿐인데 그마저도 기상이 나쁘면 취소되기 일쑤라는 점이다. 또 작전수행 도중에는 연락을 제때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아내는 오히려 소 경장 걱정이 더 크다. 연평도는 불과 1년 반 전에 포격전이 있었던 곳이고, 중국 어선들도 날로 난폭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소 경장은 “결혼 전 아내에게 특공대라고 해도 위험한 일은 전혀 없다고 했었는데, 결국 ‘사기결혼’을 한 셈이 됐다”며 웃었다.

그래도 그는 ‘해경특공대’가 늘 자랑스럽다. 소 경장은 중장거리 육상선수 출신. 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가 수차례 입상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허리와 다리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대학교 3학년 때 운동을 포기했다. 전남체고에서 코치생활을 하던 그에게 육상선수 출신인 경찰관 선배가 특공대를 추천했다. 2005년 경찰이 된 소 경장은 이제는 거꾸로 ‘특공대 전도사’가 됐다. 그에게서 육상을 배운 제자들 중 특수부대에 입대했던 몇몇은 제대 후 해경특공대에 도전키로 했다.

지금 소 경장의 바람은 하나다. 아내에게 믿음직한 남편이, 은비와 곧 태어날 행복이 두 딸에게는 훌륭한 아빠가 되는 거다. 어느 때보다도 긴 연평도에서의 일주일이 지나면 그는 반드시 그런 사람이 될 작정이다.

인천=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해경특공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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