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킴벡의 TRANS WORLD TREND]<4>미국 패션계는 지금, 순수 美製 ‘메이드 인 더 유에스에이’열풍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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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고급 미국 패션브랜드들이 ‘미국의 노동력과 기술로 만들어진다’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스페리 X 밴드오브아웃사이더스’의 신발과 디자이너 톰 브라운, 할리우드 스타 케이티 홈스가 즐겨 메는 ‘클레어 비비에’ 핸드백(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부 고급 미국 패션브랜드들이 ‘미국의 노동력과 기술로 만들어진다’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스페리 X 밴드오브아웃사이더스’의 신발과 디자이너 톰 브라운, 할리우드 스타 케이티 홈스가 즐겨 메는 ‘클레어 비비에’ 핸드백(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과거 미국산 제품을 뜻하는 ‘미제’란 표현엔 ‘부자 나라 미국의 좋은 물건’이라는 동경의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산 제품의 품질이 ‘미제’를 능가하는 시대가 되면서 ‘미제’는 그저 미국에서 만든 제품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미제’란 단어에 약간의 동경의 의미가 다시 내포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패션계에서는 말이다.

패션업계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의 제품들이 ‘명품’ 대접을 받으며 최고급이란 인식을 얻고 있다. 하지만 최근 뉴욕 디자이너들의 약진과 함께 미국에서 생산된 패션 제품들이 또 다른 의미의 ‘명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장인 정신과 유서 깊은 역사 등으로 쌓아 올려진 유럽산 명품의 명성은 일부 업체의 원산지 위조(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에서 생산된 완제품을 들여와 최종 생산지를 유럽 국가로 둔갑시켰던) 탓에 다소 퇴색되고 있다.

마치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듯 뉴욕패션위크를 점령한 알렉산더 왕, 필립 림, 토리 버치, 코치, 데릭 램, 마크 바이 마크 제이컵스 등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앞다퉈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있다. 또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오히려 강화하면서 제작 비용이 절감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로 과감히 전환했다. 점차 “유럽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기조가 미국 디자이너 사이에 확산되는 셈이다.

엄밀히 말해 지금 미국 패션계에서 불고 있는 바람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가 아니라 ‘메이드 인 더(the) 유에스에이’이다. 관사 ‘the’ 하나를 더하면서 미국의 영토 안에서, 미국인의 노동력으로 만든 ‘순수 미제’라는 의미가 확고해졌다.

‘우리 브랜드 옷을 사면 미국 캘리포니아 시의 재정과 고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아메리칸 어패럴’의 광고. 조엘 킴벡 제공
‘우리 브랜드 옷을 사면 미국 캘리포니아 시의 재정과 고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아메리칸 어패럴’의 광고. 조엘 킴벡 제공

값싼 노동력을 찾아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과 중남미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겼던 미국 패션업체들의 미국 U턴이라니…. 이들은 ‘메이드 인 더 유에스에이’ 움직임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의 노동력으로 생산한다’는 ‘애국심 마케팅’까지 펼치고 있다.

또 제3세계에서 아동을 노동현장에 투입하는 등 인권 침해적 행태를 일삼으면서까지 제작과 비용을 절감했던 ‘구태’에서 벗어나 미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좋은 물건을 만든다는 사회공헌적 이미지도 담게 됐다.

그렇기에 ‘메이드 인 더 유에스에이’ 제품은 싸지 않다. 론칭 초기부터 미국 내 제작을 기본으로 삼았던 디자이너 브랜드 ‘톰 브라운’이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는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을 내세워 주목을 받았다.

캐주얼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 역시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자리 잡은 공장에서 미국 노동력으로 생산한다는 원칙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신 철저히 이미지를 관리하고 품질을 검수해 저렴한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남성패션잡지 GQ 미국판은 4월호에서 최근의 ‘메이드 인 더 유에스에이’ 제품 열풍을 ‘열병’이라 표현했다. 작업복과 신발로 잘 알려진 ‘카하트’와 ‘필슨’ ‘레드윙’도 뉴요커의 ‘잇 아이템’이 됐다. 또 메인 주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쿼디’와 ‘스페리’의 보트 슈즈는 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협업에 나서는 브랜드가 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생산하는 피혁 브랜드 ‘클레어 비비에’는 최근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으며 2년 전 대비 500% 이상의 신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디자이너 클레어 비비에는 미국 내 ‘미제’ 열풍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이탈리아나 프랑스산 제품들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정성이나 비용을 제품 질에 투자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죠. 지금처럼 미국 국내 경기가 좋지 않은 때 미국 생산을 고집하는 데 대해 국내 바이어들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미국산’ 패션의 열풍은 유럽 브랜드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 미국 국내 경기 침체로 인한 미국인들의 애국심 발로 등이 원인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1970, 80년대 섬유 수출의 강국이었던 우리나라도 ‘메이드 인 더 코리아’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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