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동네로 스며들다… 환기미술관, 주민들과 함께 ‘부암동 아트프로젝트’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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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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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동양방아간’의 벽에는 색색가지 도롱뇽 그림과 부암동에 있는 집 사진을 모아놓은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관과 마을이 소통하는 ‘부암동 아트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백사실 계곡에 사는 도롱뇽과 동네 집들을 촬영해 콜라주한 추영호 씨의 작품이다. ② 자하손만두집 마당에 놓여 있는 부지현 씨의 집어등 작품. ③ 환기미술관의 전시장 벽에 부암동 풍경을 그린 홍시야 씨의 드로잉.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환기미술관 제공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동양방아간’의 벽에는 색색가지 도롱뇽 그림과 부암동에 있는 집 사진을 모아놓은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관과 마을이 소통하는 ‘부암동 아트 프로젝트’ 중 하나로, 백사실 계곡에 사는 도롱뇽과 동네 집들을 촬영해 콜라주한 추영호 씨의 작품이다.자하손만두집 마당에 놓여 있는 부지현 씨의 집어등 작품.환기미술관의 전시장 벽에 부암동 풍경을 그린 홍시야 씨의 드로잉.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환기미술관 제공
미술관으로 가는 길부터 범상치 않다. 동네 슈퍼의 전면에 회색 PVC 파이프가 둘러쳐 있질 않나, 떡집 담벼락엔 난데없이 도롱뇽 그림이 붙어 있다. 길 건너편 만두집 마당엔 오징어잡이 배에 사용하는 집어등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어딘지 낯설어 보이는 ‘조합’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부암동 아트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병풍처럼 감싼 동네에 자리 잡은 미술관이 같은 동네에 살거나 작업하는 작가들, 이웃 주민들의 참여와 공감으로 완성한 문화축제로서 생활 깊숙이 파고든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모델을 보여준다. 참여 작가는 김종구 지니서 이수경 손승희 이재환 최선영 씨 등 17개팀, 20여 명이다.

개발의 사각지대에 머물면서 ‘도심 속 시골’이라고 불릴 만큼 서울의 옛 정취를 간직한 풍광, 흥선대원군의 별장과 작가 현진건의 집터가 있는 역사적 배경, ‘커피 프린스’ 같은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진 부암동에서 색다른 ‘보물찾기’의 재미를 누릴 기회다. 6월 17일까지. 4000∼7000원. 02-391-7701, www.whankimuseum.org

○동네에 문화가 숨쉬다


번잡한 도심이 지척에 있으나 시간이 멈춘 듯한 동네. 이곳에도 카페와 레스토랑, 옷가게 등이 들어서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럼에도 큰길을 벗어나면 세월의 주름진 얼굴을 간직한 동네의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Ah’ ‘Oh’라는 모호한 감탄사가 반복되는 유영호 씨의 네온 설치작품은 동네의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어림짐작하게 해주고, 미술관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해 실시간 풍경을 촬영한 뒤 그 사운드와 영상을 추상적 그래픽으로 변화시킨 이배경 씨의 미디어 작품은 일상 풍경을 낯선 이미지로 드러낸다. 부암동 집들을 촬영하고 이미지를 오려서 캔버스에 붙인 추영호, 마을 풍경과 건물을 유쾌한 드로잉으로 표현한 홍시야, 20여 년간 지켜본 동네 풍경을 ‘시간의 만화상’으로 담은 박진영 씨의 작품은 동네와의 친밀감을 높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은 미술관과 그 바깥으로 전개된다. 창의문 앞 벤치와 세탁소를 배경으로 실제와 가상이 혼합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창의문 앞 삼각지대’(플라워무브먼트), 작가와 주민 관객이 서로 고민을 공유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고민상담소’(비폐기물생산자연대) 등은 전시장 안과 밖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접할 수 있다.

○ 주민의 참여로 빛나다

미술의 공공성과 장소적 특성을 탐색한 이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 뜻에 공감한 부암동 주민자치위원회를 비롯해 동양방아간 자하손만두집 백영세탁 등 20여 개의 사업장이 전시를 후원했다. 학예연구원 성민아 씨는 “미술관과 지역 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는데 부암동 작가들의 주선으로 주민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며 “자신의 집과 추억이 작품화된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동네 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소개한 지도를 들고 느긋하게 답사 코스를 걷다 보면 동네와 소통을 시도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무너진 담벼락과 돌담이 색다른 재료로 복원되고, 밤이면 골목길을 네온작품이 밝히고, PVC 파이프는 생명의 넝쿨처럼 뻗어 있다.

미술관과 그 담장을 넘어 펼쳐진 전시는 주민과 방문객에게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을 선사한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과 마을, 작가와 주민들이 친해지는 첫 단추를 끼운 점은 조형적 결과물에 못지않게 알찬 성과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미술#부암동#환기미술관#부암동아트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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