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지은 그 집에서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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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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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가 서도호 씨, 리움서 ‘집속의 집’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서도호 씨는 ‘집 속의 집’전에서 작가가 실제 살았던 서울의 한옥과 뉴욕, 베를린의 아파트를 반투명 천으로 재현한 설치작품들을 선보였다. 집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리움미술관 제공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서도호 씨는 ‘집 속의 집’전에서 작가가 실제 살았던 서울의 한옥과 뉴욕, 베를린의 아파트를 반투명 천으로 재현한 설치작품들을 선보였다. 집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리움미술관 제공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하늘하늘한 천으로 지은 한옥에, 뉴욕과 베를린 아파트를 축소 재현한 설치작품이 전시장 곳곳에 자리 잡았다, 창살과 벽돌 문양부터, 전기 스위치와 문고리까지 꼼꼼하게 재현한 공간 안팎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의 장식적 요소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나 구조물의 섬세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감정에 호소하려는 작업이 아님에도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을 길어 올린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손꼽히는 서도호 씨(50·사진)의 ‘집 속의 집’전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집으로 풀어낸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사는 그가 머물렀던 사적 공간을 재현한 작업은 의도와 표현의 모순적 관계를 통해 사유의 실마리와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한국화단의 원로 서세옥 화백의 아들로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 예일대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뉴욕과 런던에서 주목받는 전시에 참여하면서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이 전시는 2003년 이후 그가 10년 만에 여는 국내 개인전이자 리움이 마련한 생존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설치 조각 영상 드로잉 등 43점을 선보였다. 6월 3일까지. 4000∼7000원. 02-2014-6900

‘별똥별-1/5’은 한옥이 낙하산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 유학 시절 살던 집에박혀 있는 기이한 모습(위)과 함께 아파트내부에 설치된 소품들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리움미술관 제공
‘별똥별-1/5’은 한옥이 낙하산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미국 유학 시절 살던 집에박혀 있는 기이한 모습(위)과 함께 아파트내부에 설치된 소품들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리움미술관 제공
○ 집을 짓다

서울의 성북동 한옥에서 격조 있는 전통문화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며 성장한 그는 미국 유학을 계기로 문화 충격을 경험한다. 졸지에 생소한 주거공간과 만난 그는 집과의 서먹서먹함을 털어버리기 위한 몸짓으로 구석구석 줄자로 재기 시작했다. 이런 관심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의 심리를 투영한 집 작업으로 발전했다.

전시장에는 여름철 한복에 쓰이는 반투명 푸른빛 은조사를 재단해 성북동 한옥의 본채를 재현한 신작 ‘서울 집/서울 집’, 한옥의 중문을 만든 ‘투영’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집이 공중에 가볍게 떠 있고, 누군가의 내밀한 공간이 미술관에서 타인과 만나는 공간으로 반전과 변신을 거듭한 것이다. 작가의 유목적 삶을 증언하는 뉴욕과 베를린 아파트에선 내부를 걸으며 감상할 수 있다. 집의 뼈대부터 전등과 수도꼭지까지 손바느질로 세심하게 제작한 건물들이다. 뉴욕 집의 정면을 본뜬 ‘청사진’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전시된 13m 높이의 천 작품으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신비롭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옷의 개념을 확장하면 집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내 작업은 공간을 천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공간에 옷을 입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한옥에서 보냈기에 유학 시절 양옥의 특징이 더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달팽이가 집을 이고 가듯 은밀한 공간의 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다리를 놓다

렘 콜하스가 설계한 ‘블랙 박스’에 들어서면 천이 아닌 소재로 만든 집 속의 집이 펼쳐진다. ‘별똥별-1/5’은 낙하산 타고 태평양을 건너온 한옥이 유학 시절 거주했던 뉴욕 아파트에 박힌 모습을 5분의 1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내겐 충돌이 아니라 연착륙이라는 데 의미를 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아파트를 채운 소품의 경우 그 정교함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집 속의 집-1/11’에는 미국 집과 한옥이 온전히 포개져 있다. 이방인의 문화적 이질감이 차츰 새 문화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엿보게 한다.

집이 걸어 다니는 등 의인화된 집을 드로잉한 작업과 새로 시도한 영상설치작품도 인상적이다. 서울과 뉴욕을 자주 오가는 작가가 두 곳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고 중간 지점에 살 수는 없을까를 탐색해본 영상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에선 ‘별똥별’처럼 문화적 이해와 소통에 대한 낙관적 시각이 엿보인다.

가옥 형태는 달라도 그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내온 시간과 공간을 압축한 공간이 퍼즐 조각처럼 합쳐져 ‘집으로 그린 자화상’을 완성한다. 나와 남, 동과 서,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견고한 벽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고, 상이한 문화의 긴장과 충돌을 만남과 소통으로 잇고 싶은 꿈이 담긴 자화상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리움미술관#미술전시#서도호#집속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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