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인류 진화, 뜨거운 주제들]최초 인류를 규정짓는 기준… 큰 두뇌? 직립 보행? 끝나지 않는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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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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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박물관이 소장한, 국내에서 제작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복원상. 루시는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직립보행이 큰 두뇌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증거가 됐다. 동아일보DB
한양대박물관이 소장한, 국내에서 제작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의 복원상. 루시는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직립보행이 큰 두뇌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증거가 됐다. 동아일보DB
최초의 인류는 누구이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언제 나타났을까요? 현재 500만∼7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 세 종(種)이 최초의 인류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 두뇌가 커야 인류의 조상?

화석으로 남아 있는 어떤 종이 있다고 합시다. 이 종이 인류에 속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인류의 공통적 특징을 충족해야 합니다. 다윈은 인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네 가지를 꼽았습니다. 큰 두뇌와 작은 치아, 직립 보행, 도구의 사용입니다.

큰 두뇌는 다른 동물에 비해 가장 두드러지는 인류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인류의 조상은 다른 건 몰라도 두뇌는 다른 동물보다 컸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헌데 이 생각이 1970년대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교과서에서 보셨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후 동아프리카에서는 여러 가지 고인류 화석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에티오피아 하다르 유적과 탄자니아 래톨리 유적 등지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입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결과 이들은 300만∼35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때까지 발견된 인류의 조상 중 가장 오래된 종이었지요. 당시 ‘최초의 인간’으로 알려졌던 ‘루시’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그녀가 발견된 뒤 하다르 사막의 발굴 현장에서 열린 파티에서 흘러나왔던 노래가 비틀스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루시는 인간 진화에서 직립보행이 큰 두뇌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증거가 됨으로써 고인류학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됐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두뇌는 침팬지의 그것과 크기가 비슷합니다. 치아는 큰 편이고, 도구 사용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간보다 침팬지의 조상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바로 두 발로 걸었다는 점이 침팬지와 달랐습니다. 골격에서 직립보행의 흔적이 보이며, 래톨리 유적에는 두 발로 걸은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최초의 인류를 찾으려는 시도는 직립보행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아파렌시스보다 더 오래된 인류가 여럿 발견됐습니다. 390만∼420만 년 전에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 초원 때문에 직립보행이 생긴 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아파렌시스나 아나멘시스보다 더 오래전에 살았던 세 종의 인류가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중 첫째인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중앙아시아 차드에서 발견됨)는 600만∼700만 년 전에 살았던 종입니다. 심하게 일그러진 두개골만 발견됐는데, 이것만으로는 직립보행 여부를 알 수 없어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그들이 고릴라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견된 ‘오로린 투게넨시스’입니다. 이 종 역시 600만∼7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퇴골(넙다리뼈)이 발견됐는데, 무릎의 각도 등을 통해 직립보행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어 강력한 최초의 인류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에티오피아의 아라미스에서 발견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입니다. 이 종은 440만 년 전에 살았습니다. 2009년 전체 골격이 모두 공개됐으며, 그해 말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서 ‘올해의 발견’으로 선정할 정도로 인류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미두스도 직립보행을 했지만, 유인원처럼 나뭇가지를 쥘 수 있는 엄지발가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유인원의 중간 형태라고나 할까요?

지금 당신의 발을 들여다보세요. 현대 인류나 아파렌시스같이 직립보행을 하는 종의 엄지발가락은 보통 여러 발가락 중 가장 크고, 다른 발가락들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미두스에겐 엄지손가락처럼 옆으로 벌어진 엄지발가락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긴 팔과 짧은 다리 등 침팬지와 비슷한 체형을 가졌지만, 침팬지와 다르게 걸을 때 팔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생태와 연관지어 보면 기존 학설에 대한 의문점이 더 커집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인류가 온전히 직립보행만 하게 된 이유가 500만 년 전 아프리카 삼림지대가 점점 줄어든 데 있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풀이 무성한 초원에서는 두 발로 서거나 걸어서 먼 곳까지 시야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래야 포식자를 미리 피할 수 있고 먹잇감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미두스가 살던 곳은 초원이 아닌 삼림지대였지요. 초원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직립보행이 나타났다는 가설이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과연 최초의 인류는 누구이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질문은 진화론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다윈이 처음 제기한 이후 200년이 넘게 끊임없이 탐구된 주제이지만, 여전히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초 인류의 모습은 다시 한 번 충격적으로 바뀔지 모릅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sang-hee.lee@ucr.edu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 이 글은 ‘과학동아’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에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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