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보는 기쁨 키우는 보람, 희망 틔워 행복을 가꾼다

  • Array
  • 입력 2012년 3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씨앗을 심는 사람들

기자가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씨를 채취해 발아시킨 담쟁이 새싹들(위). 씨앗을 냉장고 냉장실에서 한 달 동안 보관한 뒤 심었다. 아래는 김현정 씨가 씨앗을 발아시켜 6년째 키우고 있는 바오밥 나무.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김현정 씨 제공
기자가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씨를 채취해 발아시킨 담쟁이 새싹들(위). 씨앗을 냉장고 냉장실에서 한 달 동안 보관한 뒤 심었다. 아래는 김현정 씨가 씨앗을 발아시켜 6년째 키우고 있는 바오밥 나무.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김현정 씨 제공
《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더군요. 감을 먹고 나온 씨앗이 자라 이제 거목이 됐어요.”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사는 조해옥 씨(65) 이야기다. 지금은 마흔이 넘은 큰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했을 무렵, 그는 당시 살던 아파트 화단에 감씨 하나를 심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어요. 어느 날 가 보니 감나무가 자라고 있었죠. 무척 신기했어요. 기회가 날 때마다 나무가 잘 있나 살펴봤어요. 우리 아들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 나무에게 생명을 준 것이니까요. 지금은 근처의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지만 요즘도 가끔씩 그 감나무를 찾아간답니다. 올봄에는 손녀들을 데리고 구경을 갈까 해요. 할머니가 심은 나무가 저만큼 자랐다고 하면 아이들이 무척 놀라겠지요?”

발아는 원예 동호인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장르’다. 그만큼 재미있고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씨앗을 발아시켜 키우는 것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큰 기쁨과 행복을 준다. 》
○ 아빠와 딸의 금귤나무

저는 서울 광진구에 사는 서영이네 금귤(일명 낑깡)나무입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서영이가 네 살 정도 되었을 때 금귤을 먹고 뱉어놓은 씨앗에서 자라났습니다. 서영이와 아빠가 함께 흙에 구멍을 파고 심어 주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금귤 씨에서 난 싹은 탱자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답니다. 임신 때 신 것이 당겼던 엄마가 먹은 금귤 씨앗에서 싹이 돋았는데, 그 나무와 동갑인 초등학생 딸이 매년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다만 새싹이 열매를 맺을 정도로 크려면 발아 후 8∼10년은 지나야 하지요. 저도 이르면 내년엔 예쁜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서영이 아빠는 저를 무척 애지중지합니다. 예쁜(그리고 비싼) 수제 화분에 심어주었을 정도니까요. 아저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영이와 함께 저를 심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좀 걱정되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사춘기가 가까워지면서 서영이가 짜증이 많이 늘었거든요. 아침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와 실랑이를 한답니다. 자기 주관도 강해지고요. 이제는 조금씩 엄마아빠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하려나 봅니다.

서영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어릴 적 아빠의 사랑을 자세히 기억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빠가 많이 업어주고 안아주었단 사실을 지금은 잘 모르는 것 같거든요. 어찌되었건 저는 아빠의 사랑을 계속해서 열매로 맺어내려고 합니다.

● 사과나 배, 감, 금귤 등 우리가 많이 먹는 과일의 씨앗도 화분에 심어 발아시킬 수 있다. 다만 종류에 따라 발아율이 차이가 난다. 사과와 배, 감, 금귤, 석류 등은 발아가 잘 되는 편이지만 포도나 체리는 그렇지 않다.

● 온대지방 원산의 과일은 원래 추운 기간을 거쳐야 싹이 튼다. 겨울을 지나 봄에 발아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나 배 등 품종개량이 많이 된 과일 종자는 낮은 온도에 노출되지 않아도 싹이 잘 트는 편이다. 냉장고(냉장실)에서 1∼2주일 보관했다 심으면 발아율이 더 높아진다. ‘야생성’이 강한 종자는 저온 필요 기간이 긴 편이다.

● 품종개량이 많이 된(유전자가 많이 섞인) 과일 종자는 어버이의 형질을 그대로 이어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열매를 아예 맺지 못하거나, 결실을 하더라도 볼품없는 열매가 달릴 확률도 크다. 안타깝게도 조해옥 씨의 감나무에도 열매가 잘 달리지 않는다고 한다.

○ 고현명 씨(38·경기 광명)의 열대과일나무

제 고향은 충남 당진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과일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식사 후엔 꼭 과일을 먹었지요. 제가 매니저로 있는 ‘유실수 카페’(http://cafe.naver.com/yusilsu)에서 ‘밥보다 과일이 좋아’란 아이디를 쓸 정도니까요.

워낙 과일을 좋아하다 보니 해외, 특히 열대지방의 과일들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같은 것 말고 좀 더 이국적인 것들 말입니다. 직접 나무를 심어 열매를 수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아들에게 열매를 보여주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선 아무리 찾아도 열대과일나무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궁여지책으로 해외에 나갔다 오는 지인에게 씨앗을 구해달라고 했지요. 나무를 갖다달라고 부탁하지 그랬냐고요? 묘목을 외국에서 들여오면 6개월∼1년 동안 검역 당국에서 ‘격리 재배’를 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복잡하지요?

구아바와 애플망고, 보로호, 수리남체리 등 저희 집과 사무실에 있는 열대과일나무는 모두 제가 직접 발아시킨 것들이랍니다. 열대과일나무는 개량이 별로 안 돼 발아에서 열매를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그렇지만 4∼5년 정도는 여유를 갖고 기다려야 하지요. 이제 저희 집에서도 조금씩 열매를 맺는 녀석들이 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과일을 먹고 좋아하거나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면 제 기분이 무척 좋아진답니다.

● 열대식물을 발아시킬 때는 식물이 생장할 때보다 더 높은 온도와 습도가 필요하다. 국내의 원예 동호인들은 화분에 랩을 씌우거나(발아 후에는 구멍을 뚫어줌) 밀폐가 되는 지퍼백(물론 흙과 씨앗을 함께 넣어야 함)을 이용해 온습도를 높여준다. 전기밥솥이나 냉장고 위 등 따뜻한 곳에 지퍼백을 올려놓기도 한다.

● 추운 겨울을 거쳐야 하는 온대과일 종자와 달리 열대과일 종자는 영하 또는 너무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발아하지 않는다. 뷔페식당에서 가져온 리치 종자에서 싹이 트지 않는 것은 냉동 상태로 수입되기 때문이다. 냉장 유통되는 망고스틴은 발아율이 많이 떨어진다.

○ 희귀 씨앗을 키우는 사람들


요즘엔 고현명 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해외 희귀식물의 씨앗을 구해 발아시키려는 사람도 많다. 울산에 사는 시인 손상철 씨(45)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다 바오밥나무를 키워보기로 결심했다. “책을 보면 ‘싹이 나는 대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별이 없어져버린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잖아요. 얼마나 빨리 크기에 그럴까 생각을 했지요. 그렇지만 실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발아가 쉽지 않고, 싹이 나더라도 특히 겨울에 관리를 잘해야 하더군요.”

지금 그의 집에 있는 바오밥나무는 모두 20여 그루. 재미있는 것은 생육 조건에 따라 키는 물론이고 잎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식물들은 잎의 형태가 정해져 있는데, 바오밥은 생육 조건에 따라 잎 모양이 달라져요. 처음엔 손가락 같은 것만 나왔다가 그 다음엔 잎이 두 갈래로, 또 세 갈래로, 나중엔 7갈래까지 나와요.”

사이버독도닷컴을 운영하는 김현정 씨(39)도 바오밥의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바오밥 뿌리는 무 같이 생겼어요. 잔뿌리가 없어요. 그래야 우기 때 물을 저장했다 건기에 견딜 수 있거든요.”

그는 국내 자료가 없어 외국 자료를 찾아보며 바오밥을 키우고 있다. “그냥 화훼시장 같은 곳에 나가서 보는 거랑 직접 발아시켜 키우는 건 너무나 달라요. 그 기쁨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어요. 한창 키울 때는 시간만 나면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상당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하하.”

● 현재 국내에도 해외에서 수입한 이색 식물 씨앗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꽤 있다.

● 외국에서 개인적으로 씨앗을 가져오거나, 우편으로 받을 때는 꼭 검역을 받아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 바오밥이나 연꽃처럼 껍질이 두꺼운 식물 종자는 사포로 껍질에 흠집을 내거나 칼로 일부분을 절단하면 발아율이 높아진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식물 발아,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고현명 씨가 발아시킨 동남아 원산 과일나무 고억(Gowak·앞)과 남미가 원산지인 구아바.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현명 씨가 발아시킨 동남아 원산 과일나무 고억(Gowak·앞)과 남미가 원산지인 구아바.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씨앗은 지름의 2∼3배 깊이로 심는 것이 원칙이다.

●작은 씨앗은 고운 모래나 버미쿨라이트 등 가벼운 용토와 섞어 화분에 뿌리거나, 피트펠릿(수생식물과 이끼가 퇴적돼 만들어진 피트모스를 압축한 것)을 이용해 발아시키는 게 좋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씨앗이 물에 쓸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저면관수(화분받침에 물을 부어 수분을 공급)방식을 써야 한다.

●보통 종자는 냉장고(냉장실)에 보관해야 발아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이때는 곰팡이를 막기 위해 건조후 비닐봉지에 넣는게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종자는 알맞은 수분과 온도만 유지되면 빛의 유무와 관계없이 싹이 튼다. 하지만 매발톱과 피튜니아 등 광발아 종자는 발아에 햇빛이 꼭 필요하고, 맨드라미 같은 암발아 종자는 햇빛이 있으면 오히려 발아가 느려진다.

●종자회사에서 파는 씨앗은 이미 저온노출이 되어 있어 편리하다. 단, 이런 씨앗에는 소독약이 뿌려져 있으므로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도움말=한국종자나눔회·http://cafe.daum.net/seedshare  
국립종자원 조용현 박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