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힙합 패션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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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후부’ 서상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회사 책상에 다리 올려도 되나요?” 고개를 갸웃하던 서상영 제일모직 후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이내 포즈를 취했다. 스타 디자이너에서 후부로 자리를 옮긴 서 CD는 “후부의 자산을 토대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명기자
“회사 책상에 다리 올려도 되나요?” 고개를 갸웃하던 서상영 제일모직 후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이내 포즈를 취했다. 스타 디자이너에서 후부로 자리를 옮긴 서 CD는 “후부의 자산을 토대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명기자
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제일모직 ‘후부(FUBU)’ 디자인팀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인터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책상 위에 널려 있던 천 조각을 치우고 이동식 옷걸이를 움직였다. 쌓여 있는 샘플 옷 사이에서 핑크빛 서류뭉치가 보였다. 종이 위에는 낯익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헬로키티였다.

힙합 스타일 브랜드 후부와 핑크빛 헬로키티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머리를 바짝 깎은 서상영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가 배시시 웃었다. 그는 “‘힙합은 이런 것’을 뛰어넘어 서로 이질적인 것을 섞고 유연하게 장르를 넘나들고 싶었다”며 “헬로키티를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도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부의 옷과 가방, 모자에 들어갈 헬로키티는 올해 5월부터 매장에서 볼 수 있다.

서 CD는 견출지 모양의 라벨과 심플하면서도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국내에 마니아층을 확보해온 스타 디자이너다. 그가 제일모직 후부의 CD로 자리를 옮긴 것은 지난해 6월. 낡은 브랜드의 ‘변신’ 작업을 위해 제일모직이 전격적으로 그를 스카우트했다.

사실 그와 후부도 키티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다. 후부는 정통 힙합을 지향해 왔지만 서 CD는 ‘로큰롤 키즈’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단지 그가 질색하고 싫어하는 것은 경직된 구분이다.

“발라드, 댄스, 랩, 힙합…음악 장르의 구분이 의미가 있나요? 모든 영역이 퓨전이고 크로스오버되고 있잖아요. 음악도 문화도 패션도 글자 그대로 ‘직역’하지 말고 ‘의역’해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죠.”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자기 사이즈보다 큰 옷을 입는 힙합 패션의 인기로 후부도 한때 잘나가는 브랜드였다. 어른들이 ‘바지로 길거리 청소를 하느냐’며 핀잔을 줬지만 길거리의 수많은 10, 20대는 팬티 브랜드가 보이도록 바지를 내려 입었다. 하지만 음악도 패션도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 법. 스키니 바지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옷을 함께 입는 ‘믹스&매치’도 대세로 떠올랐다.

서 CD는 “힙합을 표현하는 특정 패션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됐을 뿐, 힙합 문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브랜드의 소중한 자산을 토대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포스트 힙합’을 콘셉트로 해 전면적인 변신, 재탄생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빅뱅의 탑과 함께 모델로 등장한 후부의 새 광고. 제일모직 후부 제공
빅뱅의 탑과 함께 모델로 등장한 후부의 새 광고. 제일모직 후부 제공
그는 브랜드의 변신을 위해 광고 모델에도 도전했다. ‘빅뱅’의 탑과 함께 찍은 커다란 현수막은 제일모직 1층 로비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현수막을 본 서 CD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는 “잘생긴 탑하고 함께 광고를 찍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어딜 나선다는 게 민망했다”며 “그래도 디자이너가 나서면 소비자들이 ‘아 얘네가 좀 새롭게 놀아보려고 하는구나’ 하고 진정성을 알아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 CD는 2003년 국내 패션계에 데뷔할 때부터 남과 좀 달랐다. 데뷔 무대로 패션쇼가 아닌 영화관 극장을 택했다. 상연물은 ‘멋진 남자들’. 몸만 멋진 모델들보다 그가 보기에 진짜 멋있는 남자들을 모아 짧은 영상물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파리에서 갓 유학을 마친 무명 디자이너였지만 무작정 가수 타이거JK,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 등 20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로 시작해 어눌한 듯하면서도 차근히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던 그들도 흔쾌히 ‘노 개런티’로 그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서줬다.

디자이너로 고고하게 있는 것보다 패션을 즐기는 젊은층과 계속해서 만나고 싶었다. 2006년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 나이키와 함께 국내 최초로 온라인 패션쇼를 열었다. 제일모직으로 선뜻 자리를 옮긴 것도 대중과의 소통에 대한 갈증이 한몫했다. 서 CD는 “디자이너로 에지 있게 폼도 잡아봤고, 마니아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과 만나보고 싶었다”며 “요즘 전국 매장 판매사원으로부터 고객의 소리를 들으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패션은 꼭 내가 가져야 제 맛인 ‘소유’의 영역이 아니라 보면서도 즐겁고 신나는 축제 같은 것”이라며 “디자이너로서 그런 즐거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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