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배우는 인물 쫓기 바쁘고, 관객은 사건 쫓기 바쁘네

  • Array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연극 ‘철로’ ★★★☆

연극 ‘철로’는 바퀴 달린 의자를 소품으로 활용해 단순한 무대에 역동성을 입혔다. 코르코르디움 제공
연극 ‘철로’는 바퀴 달린 의자를 소품으로 활용해 단순한 무대에 역동성을 입혔다. 코르코르디움 제공
이 연극은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도의 민영화라는 복잡한 사안을 다룰 뿐 아니라 이와 별개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면서 사회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 대한 연극인의 고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유다의 키스’와 ‘에이미’로 유명한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헤어의 2004년 희곡 ‘더 퍼머넌트 웨이’를 각색한 이 작품은 영국 철도 민영화의 부작용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다룬 수작이다. 연출가 박정희 씨는 극의 후반에 2003년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화재 참사를 추가했다. 2008년 초연 당시 한국 현실과 병치한다는 차원에서 대구지하철 얘기를 끌어왔지만 최근 고속철도(KTX)의 민간 위탁 운영 도입이 국내 핫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전반부의 영국 사례가 더 생생하게 다가선다.

1996년부터 이뤄진 영국 철도 민영화는 가장 대표적인 민영화 실패 사례로 꼽힌다. 경쟁 구도를 도입해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자 했지만 113개로 쪼개진 사기업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안전장치를 외면하면서 영국 역사상 최악의 철도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연극은 그 복마전의 상황을 관계자들의 인터뷰로 구성했다. 한국의 극작가(김은석)가 철도 민영화 주체인 영국의 관료들과 민간 컨설턴트, 철도 전문가, 민영화 이후 벌어진 대형 철도 사고를 조사한 교통경찰, 유족, 생존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그 정치적 책임자였던 노동당 정부의 존 프레스콧 부총리(호산)도 실명으로 등장한다. 그들의 증언으로 재구성된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주식 가치라는 이익에 눈먼 모든 관계자들의 암묵적 동의 아래 이뤄진 끔찍한 인재(人災)”다.

영국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자신의 아내가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로 숨졌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사고 역시 불가피한 ‘사고’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음을 깨닫는다.

각각 맥락이 없는 인터뷰들이 극이 진행될수록 퍼즐 조각들을 맞추듯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하지만 15명의 배우가 44명의 인물을 번갈아 연기하는 데다 복잡한 사건 두 개가 서로 얽혀 있다 보니 쫓아가기가 쉽지 않다. 철도 사고의 유족을 취재한 후 유족의 처지로 연극 연습 중이던 작가가 무대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휘발유통을 들고 돌아와 무대에 휘발유를 뿌리면서 “같은 시련을 겪어본 뒤에도 이걸 읊조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라고 외치는 장면은 연극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읽혔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극단 풍경의 10주년 기념공연.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만 원. 02-889-3561∼2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