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07>苟無恒心이면 방벽사치를 無不爲已니 及陷於罪然後에 從而刑之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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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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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말했듯이, ‘등문공·상’ 제3장의 이 말은 ‘양혜왕·상’에서 맹자가 제나라 宣王(선왕)에게 仁政을 시행할 것을 권하면서 진술한 말이기도 하다. 及陷於罪然後의 於가 여기서 乎로 바뀐 것만 다르다. 한문 문장에서는 於와 乎가 서로 통용되는 일이 많다.

맹자는 인간 삶의 생활기반과 윤리의식의 관계를 恒産(항산)과 恒心(항심)이란 말로 설명했다. 恒産은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生業(생업), 恒心은 사람으로서 지니고 있는 善心(선심)이다. 사회적 정치적 책임의식을 지닌 士(사)는 항산이 없더라도 항심을 지킬 수 있지만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지킬 수가 없다. 그렇거늘 위정자가 백성들에게 떳떳한 생업을 마련해 주고 또 도덕적 자율성을 啓導(계도)하지 않고서 백성들이 생활고 때문에 죄를 지으면 엄한 형벌을 가하려고 급급한다면 그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맹자의 논리이다.

苟(구)는 가정(조건)의 절을 이끈다. 이 절의 주어는 지난 호의 문장에 나온 民이다. 放(벽,피)邪侈(방벽사치)의 放은 放蕩(방탕), (벽,피)은 偏僻(편벽·한쪽으로 쏠려 간사함), 邪는 邪惡(사악), 侈는 奢侈(사치)이다. 無不爲는 ‘어떤 부도덕한 일이라도 다 한다’는 뜻이다. 及∼然後는 ‘∼함에 이른 연후에’이다. 罔은 網(망)의 옛 글자로, 罔民은 백성을 法網(법망) 속에 몰아넣는 것을 말한다. 焉∼은 ‘어찌 ∼하랴’이다. 罔民而可爲也의 而는 목적어 다음에서 음조를 고르는 기능을 한다.

‘양혜왕·상’ 제7장에서 살펴보았던 내용이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맹자의 언설은 正鵠(정곡)을 꿰뚫는 듯 시원하기만 하다. 만일 정치인이 서민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고 서민들의 법의식만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罔民의 논리라는 사실을 또다시 강조하고 싶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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