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인생 뒤에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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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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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07]WYG-011. 왕영건(王永建). 포털아트 제공
[CH007]WYG-011. 왕영건(王永建). 포털아트 제공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그의 전기가 출간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전기가 아니라 본인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전기라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차고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된 애플을 만들고 일에 대한 맹렬한 열정과 완벽주의로 정보기술(IT)업계의 혁명가가 된 인물이니 그의 자서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가 최후에 스스로 세상에 남기고자 한 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사실은 뜻밖의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킨토시, 토이 스토리,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진화하던 그의 꿈이 종국에 한 권의 책으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기 ‘스티브 잡스’는 2004년부터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에게 잡스 본인이 직접 요구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생활이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유명한 그가 스스로 전기를 써 달라고 했을 때 전기 작가인 아이작슨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잡스는 가야 할 길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그의 부탁을 매번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한부 생명을 예견했던 잡스는 결국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 40여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전기의 초석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합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전설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 더 진화되고 더 혁신적인 방법을 추구하지 않고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인생을 정리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많은 사유의 씨앗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기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책입니다. 세상에는 전기를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 권의 전기를 집필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니 자기 전기의 주인공인 동시에 집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관은 주제의식이 되고 인생 경험은 스토리가 되어 천차만별한 전기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전기의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그의 인생을 현재진행형인 한 권의 책으로 인식하면 사람을 바라보는 각도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나의 전기는 지금 몇 장 몇 절까지 쓰였는지, 내용은 알차게 꾸며지고 있는지 냉정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자신의 인생도 타인의 시선으로 응시할 수 있습니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각계 원로의 강연을 가끔 듣게 됩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연은 많은 사람에게 풍요로운 콘텐츠와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한두 시간으로 요약하지만 거기에는 오페라나 뮤지컬 혹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심포니를 능가하는 극적 울림이 존재합니다. 인생은 고달프고 험난하지만 한평생 그것을 헤쳐 나온 인생전사의 회고담은 그것 자체로 이미 한 권의 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권의 책이 되어 가는 인생,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낸 사람들의 풍요로운 경험은 인류에게 지혜를 전달하는 이야기보따리로 전환됩니다. 신화, 전설, 설화, 전기를 비롯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숱한 옛날이야기 속에도 그런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 코스모스, 지금까지 전개된 그대의 전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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