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해 봐, 소원을 말해 봐

  • Array
  • 입력 2011년 9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청계광장 ‘있잖아요’ 공공 프로젝트-佛 장미셸 오토니엘 ‘마이 웨이’전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양수인 작가의 작품 ‘있잖아요’는 미술과 대중의 소통을 지향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 10초 동안 하고싶은 말을 하고 나오면 그 이야기가 녹음돼 광장으로 퍼져 나간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양수인 작가의 작품 ‘있잖아요’는 미술과 대중의 소통을 지향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 10초 동안 하고싶은 말을 하고 나오면 그 이야기가 녹음돼 광장으로 퍼져 나간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청계광장 입구에 설치된 유리로 만든 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이크와 페달이 보인다. 페달을 발로 누르면 마이크가 켜진다. 누구든 그 속에서 10초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다. 모든 이야기는 녹음돼 행인들이 들을 수 있게 끝없이 순환하며 재생된다. 한 중년남자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막 취직한 청년은 자신을 지켜준 연인에 대한 사랑을, 여고생은 공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세에라자드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낯선 이들의 짧은 이야기가 서울 도심의 하늘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울려퍼진다.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와 위안을 주제로 작업하는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마이 웨이’전에 선보인 ‘소원을 비는 벽’. 인을 칠한 벽에 관객이 성냥을 그으며 소망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전시를 마치면 거대한 드로잉이 완성된다. 플라토 제공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와 위안을 주제로 작업하는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마이 웨이’전에 선보인 ‘소원을 비는 벽’. 인을 칠한 벽에 관객이 성냥을 그으며 소망을 기원하는 공간으로 전시를 마치면 거대한 드로잉이 완성된다. 플라토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이 소마미술관, 아르코미술관과 협력해 마련한 ‘뮤지움 링크_청계천 광장 ‘있잖아요’ 공공 프로젝트’의 현장이다. ‘있잖아요’는 건축가이자 작가인 양수인 씨의 쌍방형 설치작품으로 10월 23일까지 오후 5∼9시에 작동한다. 미술과 대중, 도시의 소통을 주제로 기획된 프로젝트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업이란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곳에서 세상을 향해 속마음을 털어놓은 뒤 미술관에서 또 다른 소통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토’(삼성생명빌딩 1층)에서 11월 27일까지 열리는 프랑스 작가 장미셸 오토니엘(47)의 ‘마이 웨이’전에는 ‘소원을 비는 벽’이 등장했다. 인을 칠한 대형 벽면에 관객이 성냥개비를 긁어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도록 만들었다.

○ 당신의 소원을 말해 봐

20대 시절 카셀 도큐멘타에 초대작가로 참여해 주목받은 오토니엘의 ‘마이 웨이’전은 3월에 열린 퐁피두센터 전시에 이은 세계 순회전의 하나다. 사제의 길을 소망하던 남성을 사랑했으나 연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예술가의 운명을 받아들인 작가. 상실과 소멸을 애도하는 그의 작업은 자전적 체험과 상처를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관객과의 거리감을 무너뜨린다.

‘소원을 비는 벽’에선 관객이 소원을 빌며 표면에 남긴 ‘상처’의 흔적이 모여 기념비적 드로잉이 탄생한다, 거대한 유리 주판같이 보이는 ‘행복의 일기’는 그날 하루가 행복한지 불행한지에 따라 구슬을 옮겨보는 독특한 설치작품이다. 동성애자 운동을 위해 기획한 ‘상처-목걸이’는 목걸이 1000개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착용한 모습을 담은 프로젝트다.

유황 밀랍 인 유리 등 변형하는 성질을 지닌 재료를 사용한 그의 작품엔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뒤섞여 있다.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여정으로 작가는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3000∼5000원. 1577-7595

○ 당신의 마음을 말해 봐

대중을 찾아 미술관 바깥으로 나온 뮤지움 링크의 첫 프로젝트. 새로운 소통의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벗고자 시도한 점이 반갑다. 아무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1인 발언대를 통해 축적된 말 말 말. 사람들이 짧게 쏟아낸 속마음은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창문인 셈이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소통’을 주제로 쓴 글에서 ‘상대방에게 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얘기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할 때가 있다’고 술회한다. 막힘없는 소통이 아니라 그저 말하는 행위, 듣는 행위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있잖아요’ 프로젝트가 꿈꾸는 목표는 김 씨의 글 제목처럼 단순하다.

‘그저 말할 수만 있다면, 귀를 기울일 수만 있다면.’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