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경연, 왕의 공부’ 펴낸 김태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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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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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은 조선왕조 500년 이끈 힘… 왕과 신하, 한치 양보없이 토론”

역사비평사 제공
역사비평사 제공
“왕조사회에서 임금의 교양과 덕성, 인품과 자질은 그 나라 전체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경연(經筵)은 지존의 왕이 신하를 스승으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채찍질하는 인문학 공부였습니다.”

조선시대 국왕은 하루 최대 다섯 번씩 당대 최고의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했다. 왕은 해가 뜰 무렵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조강(朝講)으로 일과를 시작해 정오에 주강(晝講), 오후 2시에 석강(夕講)에 참석했다. 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특강 형식의 소대(召對)를 가졌는데, 이 중 밤에 열리는 소대를 야대(夜對)라고 불렀다. 소대나 야대에는 학덕이 뛰어난 학자나 은퇴한 원로가 특별히 초빙돼 왕과 담론을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성리학 전문 연구가인 저자 김태완 씨(사진)가 조선의 임금이 바쁜 일과 속에서도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보여주는 ‘경연, 왕의 공부’(역사비평사)를 펴냈다. 과거시험에서 목숨을 걸고 왕의 물음에 답했던 선비를 다룬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2006년)를 썼던 저자는 이 책에서도 지식인과 권력 간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선왕조 500년을 이끈 힘이었다고 강조한다.

“역사상 권력이 실패하는 원인은 권력자의 자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이권 동맹’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이들에게 부귀의 기회를 몰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경연에서 이뤄졌던 철학, 역사학 토론은 바로 이를 경계하고 임금에게 권력이란 ‘천하의 공기(公器)’임을 일깨워주는 공부였습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이이의 ‘경연일기’ 등에 기록된 임금과 경연관들이 주고받은 실제 문답을 통해 경연 현장을 생생히 재현한다. 임진왜란이 벌어진 선조 대에는 이황, 기대승, 이이 등 뛰어난 학자들이 경연 자리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저자는 “이이는 ‘선조가 경연에 임할 때 건성으로 강론할 뿐 마음을 열어 강론을 듣고 정책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실망을 토로했다”며 “아무리 도서관에 앉아 있어도 건성으로 공부하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경연에 관한 책을 쓰면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얼굴이 중첩되어 떠올랐다”며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남의 비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고 말한 대통령이 있었죠. 그의 임기 중 중국 장쩌민 주석이 방한해 청와대 뒷산의 붉은 단풍을 보며 한시를 읊는데, 적절한 말로 응수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오더군요. 또 다른 어떤 대통령은 품위 없는 말투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고, 또 다른 대통령은 외국 정상 앞에서 모욕을 당하기도 했죠.”

그는 “현대의 대통령을 교육하는 ‘경연 시스템’은 바로 언론이다”라며 “조선시대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역할을 오늘날엔 언론이 담당하고 있으므로 대통령은 여론을 주시하고 국가원로, 지식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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