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한중일 3000명 결혼관 조사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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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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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아직도 사랑? 男 그래도 사랑!한국女 “사랑보다 돈 중시” 중국女 “상대男 집 있어야” 일본女 “직업있는 男 선택”

《 “당신은 아름답고 능력도 있는데 왜 아직 결혼을 ‘못한’ 건가요?”

혹시 주변의 30대 여성에게 이런 ‘실례’를 범한 적이 있는가. 보통 사람이라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리라 전제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다음의 ‘불편한 진실’에 주목해 보자. 한국의 여성, 특히 30대는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말한다. 한국 미혼 여성들은 돈 없는 결혼은 상상하기조차 싫어하며, 결혼 후 불거질 시댁과의 갈등에 대해 강한 공포감을 느낀다. 심지어 한국 여성 다수는 그 갈등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남편과 이혼도 불사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시댁이나 처가를 바라보는 한국 남녀의 시각은 ‘비교체험 극(極)과 극’을 방불케 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그대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여성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질 텐가.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의 연중기획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가 이번에는 한국인의 결혼관과 이성관을 중국인 및 일본인과 비교해 살펴봤다. 조사 결과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결혼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컸다. 중국 여성은 한국 여성과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면서도 이혼에 대해서만큼은 보수적이었고, 일본인은 남녀 공히 ‘결혼은 부모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O₂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4개월 전 ‘한중일 마음 지도’ 첫 회에 등장했던 혜리를 다시 등장시켰다.

▶본보 4월 30일자 B1·2면 외로움에 빠진 20대, 일탈 꿈꾸는…

당시 외로움에 빠진 20대 한국 여성을 대변했던 혜리가 이번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변신해 한국 여성들의 ‘결혼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
○ 한국 여성 3분의 1만 “결혼은 필수”

가상의 한국 여성 ‘혜리’.
가상의 한국 여성 ‘혜리’.
혜리는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가 자꾸 결혼을 요구하자 고민에 빠져 있다. 친구들도 그렇고 혜리 역시 ‘결혼이란 것을 꼭 해야 하나’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비록 넘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먹고살 만큼은 벌고 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부모님이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거슬러가면서까지 결혼에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결혼. 혜리에게는 참 쉽지 않은 문제다.

한국 여성 중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3.4%에 불과해 한국 남성(57.0%)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중국 여성(51.6%)과 일본 여성(44.4%)보다도 크게 낮은 수치다. 특히 한국의 30대 여성은 4명 중 1명꼴인 25.7%만 결혼을 당연시해 같은 연령대 한국 남성(50.7%)의 절반에 불과했다.

한국 여성들의 절반 이상(54.4%)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했다. 부모세대가 많이 포함된 40, 50대가 부모의 뜻에 거스르는 결혼에 더 부정적이었지만, 미혼 여성들도 50%나 같은 답변을 내놨다. 한국의 미혼 남성들은 26.1%만이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돈 없는 결혼? “꿈도 꾸지 마!”

혜리의 남자친구는 집요하다. 그녀가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혜리도 더는 모른 척하기가 어렵다. 결혼을 결정하기 위해 가장 고려해야 할 문제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친구는 또래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다. 그 대신 씀씀이도 커서 모아둔 돈이 많아 보이진 않는다. 남자친구가 살짝 한심해 보인다. 대부분 자신과 데이트를 하느라 써버렸다지만 그 흔한 적립식 펀드 하나 들어놓지 않았다니 걱정이다. 아이를 낳은 뒤에는 1만 원짜리 한 장도 쓰기 겁난다던 친구네 부부 얘기가 남 일 같지가 않다.

‘돈이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답변은 한국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여성은 3국 중 가장 낮은 14.2%만 여기에 동의했다. 특히 미혼자(11.2%)의 동의 수치가 기혼자(15.8%)보다 더 낮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들 중에서는 중국 남성의 46.2%가 사랑만 있는 결혼에 흔쾌히 동조해 ‘로맨틱 가이’로 꼽혔다.

반대의 질문에는 어땠을까. ‘조금 덜 사랑하지만 상대방이 부유하다면 결혼할 수 있다’는 명제가 주어지자 다소 씁쓸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 남성(44.6%)과 여성(45.0%) 모두 절반 가까이가 동조의 뜻을 밝혔다. 일본(22.5%)의 두 배 가까운 수치였고, 중국(37.3%)보다도 훨씬 높았다.

○ 결혼 준비? “일단 집부터 구해!”


혜리는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결혼을 한다면 우선 신혼집부터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원룸에 사는 남자친구가 집을 장만할 목돈이 있을 리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에 있는 남자친구네 집도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맞벌이를 하더라도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지금 같은 전세난에 당장 전셋집을 구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이 남자, 대체 뭘 믿고 나와 결혼하자는 걸까.

집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중국이 비슷했고, 일본은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 ‘결혼 상대자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것’(중복응답)을 묻자 중국 여성의 48.6%와 한국 여성 33.8%가 ‘집’을 선택했다. 일본 여성은 단 4.4%만 집을 선택한 반면 현금(1년 연봉 이상)을 선택한 이가 무려 36.2%에 달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라경수 HK연구교수는 “한국에서는 결혼을 할 때부터 집은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이고 전세나 월세로 시작한 부부의 평생소원은 집을 장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 일본의 신혼부부들은 거의 월세로 시작하고, 집을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지도 않기 때문에 배우자가 집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라 교수는 “일본은 신용카드보다는 현금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현금 중심적 사고가 강하다”고 덧붙였다.  
▼ 한국 여성 52% “성격 안맞으면 결혼 1년내 이혼할 수도” ▼

한편 한국의 20대 여성 중 9.2%는 결혼 상대자 부모의 경제력을 결혼의 주요 조건으로 꼽았다. 같은 연령대의 중국 여성과 일본 여성 중 같은 대답을 한 비율은 각각 3.5%, 3.9%에 불과했다.

○30대 한국여성 15.7%만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 있다”

혜리는 오랜만에 여고동창들을 만난 뒤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결혼을 한 친구든 하지 않은 친구든 ‘시댁’ 얘기만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흥분모드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밉상 캐릭터들과 판박이라든지, 시댁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남편까지 원수처럼 여겨진다든지 하는 얘기에 박수까지 치며 몰입했다. 시댁에서 키우는 강아지까지도 밉다는 친구도 있다.

그렇잖아도 혜리는 이번 주말에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뵙기로 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느새 ‘그냥 약속을 미루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버렸다. 아프다고 해볼까? 아니면 갑자기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고 할까? 그냥 결혼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한 것뿐인데, 갑작스레 지방에 계신 분이 올라온다고 하니 정말 한숨만 나온다.

시댁에 대한 한국 여성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30대 한국 여성의 70.7%가 ‘결혼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시댁(또는 처가)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전체 연령대를 보더라도 65.0%가 같은 대답을 했고, 미혼자(58.4%)보다 기혼자(68.6%)의 비율이 더 높았다. ‘나는 시댁(또는 처가) 어른들을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이 있다’는 제시문장에 대해서는 30대 한국 여성의 15.7%만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연령대의 한국 남성(52.9%)과는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장(문화인류학)은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압축 근대화로 인한 세대 간 충돌이 더 심한 편이다”며 “한국보다 수십 년 앞서 핵가족화가 진행된 일본의 경우 한국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 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본 여성 중에서는 23.0%만이 시댁과의 갈등을 ‘필연’이라 여겼다. 동시에 시댁 어른들을 친부모처럼 대할 자신이 있다는 답변도 15.2%에 그쳤다. 이는 아들 부부가 시댁으로부터 상당히 독립돼 있음을 의미한다. 라 교수는 “일본에서는 아들 부부와 시부모 간 관계가 상당히 객관화돼 있다”며 “일본에도 ‘고부갈등’을 의미하는 별도의 용어가 있지만 고부간이 한국에서처럼 끈적끈적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시댁이 싫으면 남편을 사랑해도 이혼”

혜리는 결혼 얘기가 나온 뒤부터 남자친구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세심히 바라보고 있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연애를 하는 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닐까. 막상 같이 살다보면 나와 성격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최근 급증한 이혼율 통계를 접할 때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커진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혼 생각을 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혼을 경험한 친구가 있긴 하다. 그 친구는 시댁 문제로 자주 다투다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 “남편을 아직 사랑하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한국 여성 절반이 넘는 52.2%가 ‘결혼한 지 1년이 안 되었더라도 배우자와 맞지 않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60.7%로 가장 높았고, 40대(57.8%)가 다음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여성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한국 남성의 34.2%가 같은 답변을 한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한 여성의 거부감이 남성보다는 적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남성(42.0%)이 여성(37.0%)보다 비율이 높아 대조를 보였다.

‘시댁(또는 처가)과 갈등이 심각해지면 배우자를 사랑하더라도 이혼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 남녀의 시각차가 매우 컸다. 이 질문에 동조한 한국 남성은 14.0%에 불과했지만, 여성은 39.8%나 됐다. 한국 사회에서 시댁이 갖는 의미를 재차 확인해 주는 수치다.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처럼 이혼한 뒤에도 배우자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중국인들의 답변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중국인 45.6%가 전 배우자와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답해 한국(25.4%)과 일본(10.5%)보다는 더 ‘쿨(cool)한’ 면모를 보였다.

혜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했던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그때는 정말 결혼이란 게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정작 결혼적령기가 된 지금은 자신이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정말 결혼을 하고 싶은지조차도 헛갈린다. 그런 혼란 속에서 결혼을 위한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에 힘이 든다. 남자친구는 이런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줄까. 결혼은 정말이지 참 피곤하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교수 marnia@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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