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전후 日신문 분석서 ‘암살이라는…’ 번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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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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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강한 안중근 사형, 하늘도 애통”
“마음 약한 이토, 조선에 유연한 정책”

《“오늘 드디어 안중근의 사형을 집행했다. 아침부터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것 같다.”(‘안중근의 사형 집행’, 지지·時事신보, 1910년 3월 27일) “나는 여기서 안(安)의 생명을 끝내는 것이 심히 애석하다. 의지가 강한 사내이기 때문에… 오해로 똘똘 뭉친 나머지 흉악한 행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을 것이다.”(‘안중근 등의 공판’, 도쿄아사히신문, 1910년 2월 15일)》

안중근 의사. 동아일보DB
안중근 의사. 동아일보DB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일본 거물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안중근은 당시 일본인의 입장에서 테러리스트이자 대죄인이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당시 일본 신문의 시선은 따뜻했다. 이토 암살이 오해에 의한 것이라고 변호하는 신문도 있었다.

일본의 여성운동가인 나이토 시즈코(內藤千珠子·38) 오쓰마여대 준교수는 최근 번역된 저서 ‘암살이라는 스캔들’(역사비평사)에서 “안중근은 일본제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그의 당당한 모습 자체가 강인하고 우월한 남성적 존재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분석했다.

일본에서 2005년 출간된 이 책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 명성황후 암살 등 1900년 전후 굵직굵직한 암살 사건을 다룬 일본 신문 기사들을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부정적 대상은 ‘여성성’이라는 색채를 더해 더욱 열등하게 묘사했고, 여성이 연루될 경우 사건과 관계없는 사생활까지 파헤쳤다.

안중근을 우호적으로 보도했던 당시 일본 신문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연약하고 열등한, 여성적 존재로 묘사했다. 고종의 헤이그 밀사 사건 때 만조(萬朝)보는 “마음 약한 이토 통감”(1907년 7월 27일)이라고 비판했고, 그의 사망 이후에도 “유연한 정책을 주장해 (일본)동포의 불평과 반대를 사기도 했다”(1909년 10월 31일)며 한국에 대한 비난과 함께 이토에 대한 비판도 보도했다.

저자는 ‘여성적’인 이토에 대한 불만이 ‘남성적’인 안중근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은 일본 출간 당시 논란을 일으켰다.

책에 의하면 식민지 조선에서 최고 지위를 누린 여성인 명성황후는 그 존재만으로 일본 신문의 구미에 맞는 먹잇감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황후를 질투심 강하고 잔인한 악녀로 그렸다. 사망 후에도 일본인이 죽였다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계속 악후(惡后)로 묘사했다.

저자는 “일본은 우월한 남성으로, 조선은 명성황후로 대표되는 열등한 여성으로 표현함으로써 ‘강한 남자가 약한 여자를 지배한다’는 논리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합리화했다”고 분석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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