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年관객 80여명… 그래도 우리는 무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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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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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극단’인 한얼극단은
주중에 다른 일로 돈 벌고
주말에 공연하는 방식을 통
해 대학로를 지배하는 시장
논리에서 자유로워졌다. 이
건동 극단 대표는 “작품을
통해 단 한 명의 관객이라
도 교감할 수 있다면 그걸
로 족하다”고 말했다. 왼쪽
부터 넷째 가람 씨, 엄마 이
희즙 씨, 막내아들 해님 씨,
이 대표, 첫째 가은 씨, 둘
째 사라 씨, 셋째 한울 씨.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가족 극단’인 한얼극단은 주중에 다른 일로 돈 벌고 주말에 공연하는 방식을 통 해 대학로를 지배하는 시장 논리에서 자유로워졌다. 이 건동 극단 대표는 “작품을 통해 단 한 명의 관객이라 도 교감할 수 있다면 그걸 로 족하다”고 말했다. 왼쪽 부터 넷째 가람 씨, 엄마 이 희즙 씨, 막내아들 해님 씨, 이 대표, 첫째 가은 씨, 둘 째 사라 씨, 셋째 한울 씨.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봄기운이 움트는 요즘 서울 대학로는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공연을 올리고 음식과 커피를 파는 사람들에게 이 인파를 이루는 한명 한명은 모두 소중한 고객, 즉 ‘돈’이다. 일요일인 6일 대학로의 중심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는 계단에서부터 “뭐 보러 오셨어요”라고 말을 붙이며 접근하는 호객꾼들로 법석이었다.

그런데 이 동네 한 귀퉁이에서 관객 수에 관계없이 9년째 공연을 펼치는 ‘가족 극단’이 있다. 혜화로터리 파출소 옆 좁은 골목길에 있는 한얼소극장에서 주말마다 무언극(마임)을 공연하는 한얼극단이다.

극단 대표로 극작과 연출을 도맡고 배우로 출연도 하는 아빠 이건동 씨(54)는 서울예대 75학번. ‘독일 무용극의 어머니’ 피나 바우슈가 졸업한 독일 폴크방국립예술대에서 마임을 배우고 돌아온 정통 마이미스트다. 엄마 이희즙 씨(54)는 조명과 음향을 맡았다. 가은(34), 사라(28), 한울(23), 가람 씨(21) 등 네 딸과 외동아들 해님 씨(20)는 배우다.

이 가족은 2003년부터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는데 현재 공연작 ‘거울인형’(토요일)과 ‘기억해봐’(일요일)는 2004년부터 장기공연 중이다. 그러나 포스터는 붙이지 않고 그 밖의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는다. 대학로에 흔한 할인티켓이나 초대권도 없다. 보고 싶으면 직접 극장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야 한다. 입장권 가격은 성인 1만5000원.

일요일 공연인 ‘기억해봐’는 유년의 사건들을 추억
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무언극으로 풀어냈다.
일요일 공연인 ‘기억해봐’는 유년의 사건들을 추억 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를 무언극으로 풀어냈다.
6일 지인 한 명과 ‘기억해봐’를 관람했다. 30석의 객석에 관객은 두 명이 다였다. 그래도 배우들은 진지했고 열정적이었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남자가 유년시절 추억을 떠올린다. 여름과 겨울,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해 기쁨과 슬픔이 상징적으로 교차한다.

“처음부터 주말 공연만 한 건 아니에요. 1993년에 독일에서 돌아온 뒤 1996년에 제주도에서 대학 강단에도 서고 극단도 만들어 활동하다가 아이들이 ‘아빠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게 하자’고 설득했어요. 창고로 쓰이던 여기 76m²(약 23평) 지하공간을 2002년 얻어 극장으로 꾸몄죠.”(이 대표)

이 대표가 연기 지도를 했던 제자 4명과 함께 개관작을 준비했는데 3명이 중도 포기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연극을 보아왔던 둘째 사라 씨가 자진해 그 자리를 메웠다. 공연을 며칠 안 남기고 다른 배우 한 명도 그만둬 큰딸 가은 씨가 합류했다.

사라 씨는 “그래도 대학로인데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면 매 회 관객 10명은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가 관객을 잡아 오기도 하고 무료 시연회도 서너 차례 열고 포스터를 들고 거리 행진도 펼쳤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첫해엔 15차례나 관객 없이 공연하기도 했다. 그해 전체 관객은 67명.

계속 극단을 운영할지를 놓고 기로에 선 가족들은 계속 작품을 올리기로 뜻을 모았다. 주중에는 각자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주말에 공연을 하는 지금의 방식이 정착됐다. 아빠는 연기를 가르치고, 자식들은 영어강사, 인터넷쇼핑몰 직원 등으로 일해 돈을 번다. 이 대표는 “은행에 잔액이 하나도 없다. 한 달 벌어서 먹고살고 공연하는 데 다 쓴다”고 말했다. 지난 8년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 전체 관객 수도 100명을 넘지 못했다. 연평균 관객은 80여 명.

작품 활동으로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면 한편으론 프로 의식이 결여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대표는 “돈을 좇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변질되게 마련이다. 관객 욕심은 버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 작품에 뭐 대단한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작품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그중 단 한 명이라도 우리 작품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02-766-7010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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