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980년… 시대는 신음하고, 교수들은 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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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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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전후
김원우 지음 436쪽·1만3500원·강

“들었어요? 요새 광주가 송두리째 훌렁 둘러빠져서 작살이 났다는데요.” 동료 교수의 말을 들은 임 교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에 딱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던 그는 ‘시국도 그렇지만 생업에도 워낙 불만이 많아서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기 직전의 예비 망나니’였기 때문이다.

정작 일은 터졌지만 무능한 데다 소심하기까지 한 그는 홀로 전전긍긍할 뿐이다. 책 같은 것도 하찮아 보이고, 괜히 눈앞에 얼쩡거리는 사람들에게 악감정이 치받치고, 연구실 노크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했던 그는 이윽고 고민을 털어낸다. 애창곡의 가사답게 ‘될 대로 되라지’.

작품은 1979년 10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신군부의 집권,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까지의 극심한 혼란기를 배경으로 했다. 은퇴한 임 교수가 후배 교수인 한 교수에게 보내는 회고담 형식의 액자식 구성. 작가의 만연체 글쓰기도, 경상도 사투리를 간간이 곁들인 문장도 맛깔난다.

현대사의 격정기를 보낸 임 교수의 회고담에는 곤봉도 최루탄도, 그 흔한 민주화 구호 한 줄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에 나설 때 한쪽에 비켜서서 이사장 등 학내 권력에 편 갈라 줄서기를 하거나 아예 사회에 눈을 감아버린 지방 사립대 교수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꼬집는다.

‘싱글모임’도 그런 예다. 여교수로 미국 유학을 하고 온 심 교수의 집에 미혼 기혼 교수들이 남녀 1 대 2의 비율로 모여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며 농담 따먹기를 한다. 화투판과 카드놀이판에서 노름에 열중하고 있는 동료 교수들을 보며 임 교수는 곱씹는다. ‘어떤 위선의 허름한 땟국을 말끔히 걷어내버린 적나라한 모습’이라고. 하지만 정작 임 교수는 심 교수와 우연치 않게(사실 심 교수가 여러 차례 추파를 던졌다) 첫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외도 관계를 이어간다.

‘세상은 한 판의 연극이기도 하지만 연극만도 못하다’거나 ‘자연의 봄은 왔을지언정 정치적 자유와 해방 따위는 오지 않았고 올 리도 없다’고 비판을 내뱉지만 ‘내일 당장 연구실에서 쫓겨나는 일이 있더라도 매일 저녁 다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는 좀체로 어려웠다’며 연애에 골몰한다.

“교수 집단은 시대에 아부하는 부류,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부류, 배짱대로 살겠다는 부류 등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것은 1980년 당시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자층, 소위 먹물들의 위선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창작 배경이다.

중산층의 위선, 타락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온 작가는 3년 만에 발표한 이 장편에서도 그 궤를 같이한다. “중산층은 사회의 중추와도 같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기 위해서 중산층을 두껍게 조명하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작품은 회고담의 제1장을 끝낸 임 교수의 회한으로 끝을 맺는다. 40년 동안 열심히 가르쳤지만 사실상 뻔한 지식의 전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을 만한 후학 하나 가르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글에서 임 교수는 장황한 조언을 이어가지만 이를 읽는 한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솔직한 자기반성보다는 여전히 변명 일관인 식자층의 위선이 다시 떠올랐으므로.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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