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행복을 계량화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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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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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순간적 행복감은 뇌 화학변화 측정 가능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질문을 시대의 지성에게 던져 주십시오. 자신의 문제이자 모두의 의문인 질문, 사안의 본질과 근원을 따지는 질문 등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소중하게 담아 두었던 질문에 답변이라는 짝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종교 등 분야는 가리지 않습니다. 지식과 지혜의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 답을 듣겠습니다. 격주로 연재합니다.》

행복을 객관적인 척도로 계량화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만약 철학자가 답한다면, 아마 불가능한 이유를 100개쯤 꼽았을 것이다. 그러나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오랜 물리학 전통을 몸으로 배운 나로서는 ‘가능하다’는 답에 무모하게 도전해 볼 용기가 있다.

과학적으로 이 질문에 답해 보자면, 우선 행복을 조작 가능한 방식으로 정의해야 한다. 행복이란 소유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갈망이 적고, 현재 상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쁨과 즐거움이 종종 찾아오리라 기대하는 상태 정도로 말이다.

이 정의에 동의한다면, 이런 감정 상태를 만들어내는 뇌 기작에 대해 우리는 꽤 알고 있는 편이다. 행복 상태에서 우리의 변연계는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측중격핵에선 도파민을 분비하며 즐거움과 쾌락을 만들고, 그로 인해 생성된 엔도르핀은 전두엽에 작용해 인간에게 만족감과 행복을 선사한다. 이런 육체적 변화 없이 인간은 행복을 만끽할 수 없다. 인간 뇌에 이런 변화를 매 순간 읽어내는 칩을 장착한다면 행복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1960년대 파푸아뉴기니 고원지대에 살고 있는 포레족을 찾아가 그들의 감정표현을 연구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포레족의 언어를 몰라도 그들의 미소와 웃음에서 보편적인 긍정 감정과 행복감을 측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행복 측정은 수많은 장애물을 잘 넘어야 한다. 왜곡의 법칙이 그 대표적인 방해꾼이다.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설문조사 직전에 우연히 동전 10센트를 줍도록 설정하면, 겨우 동전 하나만으로 ‘살아온 삶 전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40년간 분노와 우울, 두려움 등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무려 15만 편의 논문이 출간된 반면 행복과 기쁨, 만족에 대한 논문은 8000편에 불과한 것도 그 때문이다. 행복은 우울에 비해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무엇보다 주관적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객관적인 행복 측정의 걸림돌은 측정 후에도 도사린다. 인간은 끊임없이 만족에 적응하고 현재 상태에 쉽게 싫증낸다.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주듯, 행복도 시간이 빼앗아간다. “행복해지기는 간단하다. 다만 간단해지기가 어려울 뿐”이라는 말처럼, 행복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쉴 새 없이 요동친다. 그 복잡한 패턴을 손에 넣은들, 행복에 대해 뭘 말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행복을 찾아가는 67억 개의 길을 ‘모두’ 탐색할 순 없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위안이 되기도 한다. 행복감에 오래 젖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바꾸고 노력하도록 우리 뇌가 디자인돼 있기에 우리는 계속 ‘행복을 추구하는 위대한 동물’이 된 것이니까. 그것이 행복의 측정을 궁극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지라도.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질문은 e메일(jameshuh@donga.com)이나 동아일보 문화부(서울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미디어센터 12층 ‘지성이 답한다’ 담당자 앞)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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