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겨울의 진미··· 못생겨도 맛은 천하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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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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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와 개불



‘곰탱이 멍탱이 말말들 마소/그래도 곰탱이 금탱이 되어/인기가 하늘을 찌른답니다…못생긴 그 모습 눈이 놀라고/시원한 그 맛에 혀가 기가 막혀…한때는 두리뭉 물곰 잡히면/재수가 없다고 텀벙 던져서/물텀벙 그렇게 불리었지만…뼈 없이 그렇게 살만 있어서/그 시간 지나면 맛이 변하고/얼음에 저장함 살이 떨어져/한순간 먹는 맛 귀한 맛이죠’ <임인규의 ‘곰탱이 물곰(물메기)’에서>

물메기는 흐물흐물하다. 빈 부대자루 같다. 세우자마자 주르륵 퍼질러진다. 고주망태가 된 술꾼과 똑같다. 함지박에 담아놓으면 끈끈한 죽 같다. 고체 같기도 하고 액체 같기도 하다. 도대체 뼈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민물메기와 닮았다’고 해서 물메기이다. 우리나라 동서남해안에서 두루 잡힌다.

물메기는 원래 ‘꼼치’가 정식 이름이다. 꼼치는 생물분류학상 ‘곰치’와는 완전히 다른 바다생선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삼척 동해사람들은 곰치라고 부른다. 곰치국을 즐겨 찾는다. 속초 주문진에서는 ‘물곰’이고 물곰탕이다. 나머지 영덕 포항 남해 서해에서는 거의 물메기이다. 아니 ‘물텀벙’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 많다. 서천에서는 물잠벵이라고도 한다.

물메기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보다 더하다. 징그럽다. 험상궂고 우악스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부들은 물메기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자마자 “쯧! 쯧!” 혀를 차며 바다에 내던져버렸다. 이때 “텀벙”소리가 나는 것을 빗대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즘 물메기는 ‘귀하신 몸’이다. 술꾼들은 몸이 단다.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에도 ‘살이 매우 연하고 뼈가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적혀 있다. 술독 푸는 데 으뜸인 것이다. 국이나 탕으로 끓여 먹으면 속이 확 풀린다. 비린내가 없을뿐더러 맑고 담백하며 시원하다. 후루룩! 소리 내어 국 들이켜듯 먹는 맛이 쏠쏠하다.

물메기는 겨울이 제철이다. 알을 낳으러 얕은 연안으로 몰려든다. 거무튀튀한 수컷이 연하면서 쫄깃해 맛이 더 좋다. 암컷은 붉은빛을 띤다. 물메기는 오래되면 맛이 영 아니다. 냉동보관해도 살이 다 풀어져버린다. 잡자마자 바로 끓여 먹어야 제맛이 난다. 물메기탕은 무와 대파를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춰 맑게 끓인다. 양념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 시원하고 담백하다. 너무 오래 끓이면 살이 풀어진다. 센 불에 살짝 끓이는 게 포인트다. 동해 삼척에선 묵은지를 넣어 끓인다. 간도 김칫국물로 맞춘다. 얼큰하고도 시원하다.

부산, 통영에선 맑은 물메기탕에 떡국을 넣어 끓인 물메기떡국을 즐긴다. 남해안에선 회나 찜, 무침으로도 먹는다. 말려뒀다가 술안주로 먹기도 한다. 물메기의 최고 맛은 누가 뭐래도 아침에 속풀이로 먹는 탕이다. 껍질과 살 사이의 점막덩어리가 단연 으뜸이다. 뜨끈하고 물컹한 그 덩어리가 슬쩍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배 속이 뜨뜻해지면서 환해진다. 간밤에 퍼마셨던 술독이 단숨에 손을 들고 스르르 무장해제해버린다. 그것은 살랑살랑 ‘물렁 수류탄’인 것이다.

개불알꽃은 들꽃이다. 난초과로 5∼7월에 꽃이 핀다. ‘요강꽃’이나 ‘복주머니난’이라고도 부른다. 그 귀한 광릉요강꽃도 개불알꽃과 사촌쯤 된다. 왜 이름이 하필 개불알꽃일까. 우선 꽃이 붉은 자주색이다. 입술꽃잎에 실핏줄 같은 맥이 그물처럼 이어졌다. 생김새는 굵은 감자알 같다. 그렇다. 영락없는 개불알이다.

바다에도 ‘개불알’이 있다. 바로 개불이다. 개불알을 닮았다고 개불이다. 역시 몸통이 자주색이다. 하지만 모양은 개불알보다는 개 거시기와 비슷하다. ‘개×’처럼 단순한 원통형이다. 양끝을 끈으로 묶은 부대자루라고 보면 된다. 양끝은 인풋(input)인 입과 아웃풋(output)인 항문이다. 항문엔 10개 안팎의 뻣뻣한 털이 에워싸고 있다.

개불은 입구와 출구만 달린 통이다. 생산라인이 단순하기 짝이 없다. 마디 없는 ‘일(一)’자형이다. 하기야 인간도 크게 보면 ‘일자형 생산라인’이다. 입으로 밥이 들어가고, 항문으로 똥이 나온다. 하지만 인간은 생산라인이 몸통 속에 전부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손발이 삐죽 나와 있고, 컨트롤타워인 뇌가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개불을 먹으려면 우선 원통자루를 해체해야 한다. 원통자루를 풀면 그 속에 들어있던 온갖 부속물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고장 난 괘종시계 부속품들 같다. 붉은 피가 흐르고 그 가운데 크고 작은 내장이 쏟아진다.

사람들은 개불의 원통자루를 날것으로 먹는다. 초고추장에 찍어 잘근잘근 오래 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바다냄새가 새록새록 돋아난다. 개불은 12월부터 3월 사이에 잡힌다. 추워야 제맛이다. 여름에는 뻘밭이나 모래밭 1m 깊숙이 틀어박혀 있다가 한겨울에 위로 올라온다. 갈고리로 밑바닥을 훑어가며 잡는다.

개불은 원통자루 하나가 전부다. 오죽하면 중국 사람들은 개불을 ‘해장(海腸)’, 즉 ‘바다창자’라고 했을까. ‘바다 지렁이’라고 부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개불은 그 원통자루를 자유자재로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한생을 산다.

개불의 원통자루 안은 평소 바닷물로 가득 차 있다. 잔뜩 부풀어 있다. 물이 빠지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하다. 박종해 시인은 그런 개불을 ‘무엇이든 먹으면 물이 되어 나오니/뱃속을 한번 뒤집어보고 싶다/더러운 것들 훌훌 털어내고/햇볕에 말렸다가/다시 뒤집어 놓을 수는 없을까’라고 노래한다.

내 배 속도 가끔 뒤집어보고 싶다. 가슴속도 대청소하고 싶다. 온갖 더러운 것들 빡빡 문질러 벗겨내고 싶다. 햇볕에 말려 고슬고슬하게 하고 싶다. 달빛에 말려 마음 촉촉하게 하고 싶다. 오호라! 그러기엔 이제 너무 늦은 것일까?
‘이 놈의 몸속은 바닷물로 가득 차 있어 평소엔 잔뜩 부풀어 있다가도, 물을 빼고 나면 형편없이 졸아들어 쪼글쪼글해지고 마니, 거참 영락없이 사정 후 뭣 같지 않겠습니까//여자들에게 처음 개불을 먹어보라 하면 에구머니나, 망측하고 징그럽다고 기겁을 하며 내숭을 떨지만 일단 한번 먹어본 뒤에는 고 달착지근하고 오돌오돌 씹히는 맛에 그만 홀딱 반해서 나중엔 남편까지 내팽개치고 즈이들끼리…’ <김선태의 ‘개불’에서>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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