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뉴스데이트]대단한 땅콩들, 크라잉 넛

  • 동아일보



(신광영 앵커) '크라잉 넛'이라는 밴드를 아십니까. 아마, 밴드 이름은 생소하더라도 '말달리자'라는 노래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구가인 앵커) 밴드가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그 넘치는 에너지는 여전한 크라잉 넛을 만났습니다.

***

거침없이 외치며 세상에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때로는 더할 수 없는 낭만과 순정을 품고 노래를 불렀고

떠돌이 유랑단처럼 춤을 추고 떠들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무려 15년이 흘렀습니다. 데뷔 당시 20대 초반이던 다섯 명의 멤버들은 이제 30대 중반이 됐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건 있습니다.

(인터뷰)
일단은, 재미죠. 재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고, 일도 의무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즐겨서 하는 게... 사실 즐기려면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게 음악이고, 다른 음악,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지만 먹는 건 지루하지 않잖아요. 오늘은 을밀대 가고, 내일은 우래옥 가는 거죠.

인터뷰는 베이스 한경록이 빠진 채 보컬 박윤식과 기타와 드럼을 맡고 있는 이상면 이상혁 형제, 그리고 건반을 담당하는 김인수 등 4명과 크라잉넛의 서교동 작업실에서 진행됐습니다.

'우는 땅콩'이라는 뜻의 크라잉 넛. 그 출발은 20년 전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집부터 합류한 김인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초중고 동창입니다.

(인터뷰)
수학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좀 앞서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기타를, 전자기타를 친 거예요. 여자애들이 와... 이렇게 된 거죠. 저거다, 나도 할 수 있다.

인디밴드로선 유일하게 앨범 10만 장 이상 연속판매를 기록했고, 매니지먼트 시스템에 의지하지 않고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습니다.

이름이 조금씩 알려진 뒤 주류 기획사의 영입 제안도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인터뷰)
초창기였는데 (기획사에서) 와서 보컬만 바꿔 해보지 않을래 제안했거든요. 만일 저희가 얘만 바꿔서 했다면 나중엔 보컬만 남고 다 잘릴 거라는 걸 알았어요. 나중엔 투자한 만큼 돈이 안 되니까 아예 공연을 못하는 거예요.

멤버교체 없이 지금까지 함께했다는 것은 크라잉 넛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멤버들은 군 입대도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관계유지의 비결로 술과 시간, 노력을 꼽습니다.

(인터뷰)
연말연시 경찰서 가보시면 망년회 자리에서 다툼이 있어서 오신 분들 3, 4시간 가만히 관찰해 보면 나중엔 우리가 왜 싸웠지 하면서 화해를 해요. 시간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보다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원칙은 있습니다. 주류를 따라가는 음악은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적어도 음, 가식적인 난 널 사랑해... 이런 건 안 해요. 저희가 음악을 할 때 물론 사랑도 하는데 그건 보편적인 사랑이지 가식적인 걸 만들진 않으려고요.

아이돌은 넘치지만 음악적 다양성이 없는 한국 가요시장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습니다.

(인터뷰)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 락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음악에서 주축은 밴드였어요. 지금도 그런데, 우리나라는 뒤에 있는 사람은 싹 커튼으로 가리고 아이돌만 보이는 거 같아요. (일부수정)

15주년 기념으로 최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낸 크라잉 넛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철들지 않는 밴드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어떻게 기억되기 보단 그냥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우리를 끄집어내서 기억하기 보단 그냥 존재하고 싶어요.

동아일보 구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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