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아홉명의 文才兒들 “더 큰 사고 지켜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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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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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50세 만학도…극작가 …
이력만큼 개성 다양한 글맵시
“드디어 작가…내인생 최고의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일하던 오후였다.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무심하게 받았는데 이름을 물어본다. “동아일보사입니다”라는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전화를 끊은 뒤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귀에는 “당선작으로 결정됐습니다”라는, 방금 들은 소식이 떠나질 않았다. 그가 ‘작가’로 불리게 된 순간이었다.》

“새해, 작가로 시작합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먹을 불끈 쥔 이들에게 새해 첫날은 
작가로서 첫걸음을 딛는 날이다. 왼쪽부터 손보미(단편소설) 송정양(동화) 방동원(희곡) 권민경(시) 정재민(중편소설) 
지승학(영화평론) 고은희(시조) 안정희 씨(시나리오). 문학평론 당선자 유정 씨는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새해, 작가로 시작합니다!”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먹을 불끈 쥔 이들에게 새해 첫날은 작가로서 첫걸음을 딛는 날이다. 왼쪽부터 손보미(단편소설) 송정양(동화) 방동원(희곡) 권민경(시) 정재민(중편소설) 지승학(영화평론) 고은희(시조) 안정희 씨(시나리오). 문학평론 당선자 유정 씨는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이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9개 부문에서 9명의 당선자가 나왔다. 기념촬영을 위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자리를 함께한 당선자들은 당선 통보를 받던 날을 곱씹으면서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입을 모았다. 환하게 웃던 이들은 이내 “작가로 출발한다는 육중한 무게감이 어깨를 누른다”며 숙연해졌다.

○ 당신은 왜 글쓰기를 택했는가

“기쁠 때는 기뻐서, 힘들 때는 힘든 것을 잊으려고, 가난할 때는 돈을 벌려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는 그래도 살아내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시나리오 부문에 당선된 안정희 씨(41)는 방송작가로 활동해 왔지만 영화에 대한 오랜 꿈을 갖고 있었다. 영화 제작을 했던 오빠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자신이 글쓰기를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었듯, 그는 자신의 작품이 옮겨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꿈을 갖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운명은 생각지도 않게 온다. 올해 당선자 중 단연 이채로운 이력의 작가인 중편소설 당선자 정재민 씨(35).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직장 생활을 하는 그는 “문학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던 공학도”였다. 둘째 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정 씨는 TV드라마에서 드라마작가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얘기를 만들어낸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됐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하고 얘기 하나를 아내에게 들려줬다. 재미있다며 아내가 북돋우자 그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습작을 시작한 지 2년, 신춘문예에 처음으로 응모한 그는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손보미 씨(31)는 열여섯 살에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소설 읽기라는 “이상한 경험”에 푹 빠졌지만 그 자신은 소설가의 꿈을 한 번도 꿔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대학에서 선배의 권유로 글쓰기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소설이란 것을 처음으로 써봤다. “너무 재미있다”는 그 희열이 그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도록 이끌었다. 2년 전 문예지로 등단했지만 신춘문예라는 열렬한 ‘로망’은 접히지 않았고, 재등단에 도전하게 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실력을 자랑하는 당선자들도 눈에 띈다. 동화 부문 당선자 송정양 씨(30)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연극교사로 일하던 송 씨는 어린 학생들과 부대끼면서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신춘문예에 투고하면서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의 이름을 필명으로 쓴 그는 “내 얼굴이 실린 신문을 보여드리면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문학평론 부문 당선자 유정 씨(34)는 연극평론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점에 가면 문학상 수상집부터 뒤져보던 문학소녀였다며 기자와의 전화를 통해 ‘과거’를 털어놓는 유 씨. “오랫동안 문학을 사랑하고 선망해 왔는데 문학평론가가 되다니 가슴이 벅차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이런 작가가 되겠습니다”

“등단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당차게 말하는,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중 가장 어린 시 부문의 권민경 씨(29). “청탁의 압박부터 고민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건 당선되고 고민하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는 권 씨는 “자기복제의 시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미래의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시조 부문 당선자 고은희 씨(50)는 “올해 당선자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지금 대학생이니 심정적으로는 가장 젊을 것”이라며 웃었다. 살림과 자녀 양육에 몰두하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2007년 대학에 입학했다.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아서 문예창작과에 들어간 고 씨는 시조 창작을 해보라는 교수들의 권유에 습작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신춘문예에 도전한 고 씨는 올해 동아일보와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동시에 당선돼 두 배의 기쁨을 얻게 됐다.

희곡 부문 당선자 방동원 씨(37)는 바츨라프 하벨, 해럴드 핀터 등 유명한 희곡 작가들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극작의 꿈을 갖게 됐다. 언젠가 이런 멋진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해온 방 씨에게 신춘문예 당선은 그 꿈을 위한 첫걸음이다. “외국에서도 제 작품이 번역돼 무대에 오르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고 포부를 밝혔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을 때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 지승학 씨(37)는 TV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설명하는 과학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기린은 처음에는 목이 길지 않았지만 높은 곳에 있는 잎을 먹으려는 의지를 가졌고 그로 인해 목이 길어졌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으면서 그는 자신이 라마르크의 기린처럼 의지를 가졌고, 그로 인해 영화평론가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지를 잃지 않고, 비평을 위한 비평이 아니라 대중과 영화 간 따뜻한 중매인의 역할을 맡는 비평을 쓰겠다”고 지 씨는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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