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는 ‘아프다’ 소리 치는 장르 상처있는 한 누군가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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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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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 ‘소문들’ 펴낸 시인 겸 평론가 권혁웅 교수

‘가을엔 시집 한 권’이란 말은 무색하다. 최근 2, 3년 새 시집의 판매량은 뚝 떨어졌다. 여러 작가의 시를 모은 앤솔러지 시집으로 한동안 시가 관심을 모았지만 이마저도 뜸해졌다.

새 시집 ‘소문들’(문학과지성사)을 출간한 권혁웅 씨(43)를 26일 만났을 때 “시가 왜 이렇게 쇠락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시인이고 시 평론가이며, 대학 강단에서 시를 가르친다. 우리 현대시를 분석하는 논의의 틀을 모색한 시학 이론서 ‘시론’도 시집과 함께 냈다.

“책을 안 읽는 현실은 오래된 것이고…인터넷에서 시집 목차만 치면 웬만한 시가 다 나옵니다. 한 권 분량을 인터넷으로 읽을 수 있는 겁니다. 공짜로 얻어 보는 문화에 익숙해졌으니 시집이 제대로 나갈 리 없지요.”

이 인터넷 세상은 성찰이란 것을 거북해하는 것이 특징이다. 화면 고치기를 할 때마다 새로운 소식이 뜨니 거기에 발맞추기 바쁜 터다. “시는 읽고 또 읽고 하면서 말맛을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세상에서 어디 그러기가 쉽나요.”

권혁웅 씨는 “마음의 상처를 토하기 위해 시를 택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으며, 그 상처를 자기만의 언어로 육화하는 방식을 찾으려는 시인들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권혁웅 씨는 “마음의 상처를 토하기 위해 시를 택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으며, 그 상처를 자기만의 언어로 육화하는 방식을 찾으려는 시인들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는 만화, 에로비디오 같은 1980년대의 문화코드를 통해 지나온 시절을 조망했던 시집 ‘마징가 계보학’으로 조명 받았다. 그는 ‘소문들’을 두고 “현재로 온 ‘마징가 계보학’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익숙한 언어들을 낯설게 조립하는 이전의 방식을 사용하되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내놓는다. 가령 ‘드라마’ 연작에서는 뻔한 드라마 내용을 시로 옮김으로써 우리 삶의 통속성을 보여주고, ‘야생동물보호구역’ 연작에서는 동물들의 생태에서 사랑이나 고통 같은 인간 삶의 다양한 무늬를 본다. ‘가시복어는 뚱뚱한 물 풍선이 되고 싶어서 온몸의 뼈들을 다 버렸다 남은 건 등뼈뿐이어서 평소에 그는 작은 몽둥이다 그러다가 누가 건드리면 헛물을 들이켜고 또 들이켠다’(‘기다림-야생동물보호구역 7’에서)

난해해진 시 세계는 2000년대 중반 그가 호명하고 지지했던 ‘미래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신(新)서정’으로 불리는 앞선 선배 시인들과는 다른, 실험성 가득한 젊은 시인들을 가리키는 미래파는 화려하게 주목받았지만 그 이후의 구별되는 시인군은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때마침 시의 위력도 눈에 띄게 꺾인 터다. “그때 뛰어난 시인들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져 나온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었고…다음 세대 시인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언어를 찾지 못했을 뿐이에요. 곧 찾게 될 것이고요.”

열다섯 살에 처음으로 시를 썼을 때의 감격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시인. 그래서 아무리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 해도 “문학의 최소 인원은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 그의 말은 시에 대한 사랑으로 절절하다.

“우리 과(한양여대 문예창작과)만 해도 시를 쓰겠다는 학생들은 소수이지만, 늘 있습니다. 그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시로 외칠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아요. 시는 ‘아프다!’고 소리 내어 탄식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아버지한테 맞고 크는 누군가가 있어요. 몸에 질병을 짊어지거나 사람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거나…. 그들에게 시는 구원입니다. 그러나 시에는 그들이 구원이지요. 그렇게 해서 계속 쓰이니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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