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타인의 고통 외면하는 일그러진 사회상…연극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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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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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극단 신기루만화경
사진 제공 극단 신기루만화경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 실릴 만한 비루한 사건을 시적 리얼리즘의 무대로 구축해온 극작가 겸 연출가 동이향 씨의 창작극 ‘어느 날 문득, 네 개의 문’(사진)이 새롭게 무대에 오른다. 극단 신기루만화경이 지난해 초 초연한 이 작품은 초등학생이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물려 죽은 무참한 사건에도 무감각해진 한국사회의 심리적 풍경을 네 편의 에피소드로 그려낸다.

10년 만에 모인 40대 대학동창들은 그날 모임에 늦는 여자 동창생이 불치의 전염병에 걸렸고 기형아를 낳은 미혼모라는 풍문을 나누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침묵한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홧김에 살해한 남편과 급전을 꾸러 아침 일찍 그 집을 찾아온 처형은 암묵적으로 그 살인을 정당화하기 급급하다. 한적한 공원의 후미진 맹수사육장에 모여 담배를 피우는 여고생들은 눈앞에서 매일같이 똑같은 사건이 반복돼도 무관심하다. 그리고 이혼한 부모에게서 버려져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 열한 살 초등학생은 할아버지가 키우는 도사견이 무서워 빈집 앞에서 서성이지만 자신이 이미 개에게 물려 죽었음을 모른다.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들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 문 저편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에는 네 개의 문이 등장한다. 별장의 현관문, 아파트의 안방 문, 사육장의 철창문, 그리고 개집 문이다. 그들 문 이편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문 저편을 공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본다. 그곳은 저주받은 공간이고 금기의 공간이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는 순간 관객은 불현듯 깨닫게 된다. 지독히 현실적으로 보이는 문 이편이야말로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환상공간이고 타인의 고통이 숨쉬고 있는 문 저편이 진짜 현실이 숨쉬는 공간임을. 2만 원.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선돌극장. 02-741-358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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