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959>孟子見梁惠王하신대 王曰쑚不遠千里而來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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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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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의 처음인 ‘梁惠王·上’의 첫머리다. 유교의 경전인 四書三經에는 金科玉條(금과옥조)의 어구로 가득한데 ‘맹자’에는 특히 생동적인 고사성어가 많다. ‘맹자’는 전국시대 鄒(추)나라 사람 孟軻(맹가)가 지었으며 모두 7편(각각 상하)이다. 맹자는 공자의 仁 개념에 義 개념을 덧붙여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켰으므로 후세 사람은 유교를 孔孟之道라 불렀다.

魏(위)나라 제후 앵(앵)이 초청하자 맹자는 위나라 수도 大梁(대량)으로 갔다. 양혜왕의 양은 대량을 뜻하되, 나라 이름을 代喩(대유)했다. 혜왕은 왕을 僭稱(참칭)한 사람에게 죽은 뒤 붙이는 시호라고 한다. 양혜왕은 자신이 초청했던 사람이 모두 富國强兵(부국강병)의 방책을 말했으므로 맹자에게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들으리라 기대했다. 수는 나이 많은 분을 부르는 2인칭이다. 不遠千里而來는 먼 길 온 분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以는 방도라는 뜻이다.

율곡 이이의 ‘김시습전’에 金守溫(김수온)이 ‘孟子見梁惠王’이라는 논제로 성균관 유생을 시험한 이야기가 나온다. 上舍生(상사생) 하나가 김시습을 찾아가 “이 말이 어찌 논제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했다. 김시습은 껄껄 웃고는 곧바로 글을 지어 주며 “자네가 지었다고 하여 이 노인을 속여 보게”라고 했다. 상사생이 그 말대로 하자 김수온은 다 읽기도 전에 “悅卿(열경·김시습의 字)이 어느 절에 머물고 있나?”라고 했다. 김시습의 글은 ‘양혜왕은 왕을 참칭했으므로 맹자가 만나서는 안 되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김시습이 왕권의 정통성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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