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최초의 인간 루시’ 책 한권이 내 인생 바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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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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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국방부 소속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AC) 첫 한국인 연구원 진주현 박사

60년前 실종 위치-충치 부위 기록… 미군 자료보며 여러번 감탄했죠
한국군 유해도 상당수 발견되지만, 기록 빈약해 대부분 신원 확인 못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4형제가 모두 참전한 2차 세계대전에서 형제 3명이 전사하자 나머지 병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원들의 고난과 활약상을 보여준다.

미 국방부 소속의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PAC·제이팩)’는 이처럼 잃어버린 전우를 찾는 세계 최초의 유해 발굴 전담 부대이다. 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돌아오지 못한 7만여 명의 미군 유해를 찾는 것이 이들의 임무.

인류학자 진주현 씨(31)는 올해 초부터 하와이의 JPAC본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JPAC 최초의 한국인이다. 휴가를 맞아 서울을 찾은 그를 11일과 15일 만났다.

앳된 얼굴의 그는 학창시절에는 미술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고 한다. 우아하게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우연히 읽은 ‘최초의 인간 루시’라는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미 국방부 소속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 최초의 한국인 연구원 진주현 박사를 1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진 씨는 뼈를 가지고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생물인류학이 정말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원시인들의 해골 모형을 놓고도 그의 ‘뼈’ 예찬은 계속됐다. 변영욱 기자
미 국방부 소속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 최초의 한국인 연구원 진주현 박사를 15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자택에서 만났다. 진 씨는 뼈를 가지고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생물인류학이 정말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원시인들의 해골 모형을 놓고도 그의 ‘뼈’ 예찬은 계속됐다. 변영욱 기자
“1974년에 발견된 320만 년 된 인류화석 ‘루시’에 관한 책이에요. 수백만 년 된 화석을 캐내 인류 기원을 밝히는 인류학자들의 이야기지요. ‘인류는 어떻게 생겼을까’를 머릿속 관념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증거로 찾는 거죠. ‘이렇게 재밌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진 씨는 생물학적 증거로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생물인류학에 빠져들었다. 문화인류학이 주류인 국내에서 생물인류학을 제대로 배우기란 쉽지 않았지만 당시 서울대 강사였던 박순영 교수(현 인류학과 학과장)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박 교수는 ‘돈 안 되는 공부’라며 적당히 학점만 채우려는 학생들 틈에서 진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진 씨에게 감명 받았고 자신의 수업을 모두 등록하게 한 뒤 그에게 따로 과제를 주며 공부를 시켰다.

진 씨가 ‘필드 스쿨’을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2000년 여름 하버드대에서 온두라스로 마야문명유적지 발굴을 간다기에 전화를 걸어 ‘꼭 가고 싶다’고 사정해 처음으로 필드에 나갔어요. 2001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2002년은 탄자니아에 갔지요. 세숫대야 하나로 10명이 세수하고 밤에는 하이에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들어야 했지만 정말 많이 배웠어요.”

2002년 대학을 마친 진 씨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을 떠났다.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중국 운남성에서 출토된 동물 뼈로 선사시대 생활상을 복원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조그만 단서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찾아내는 과정이에요. 사람 뼈를 발굴하다 보면 동물 뼈도 함께 나와요. 사슴 뼈가 나오면 사슴을 잡아먹었겠거니 하지만 어떻게 사슴을 잡았는지는 알 수 없지요. 직접 해봐야 아는데 그래서 도축장을 찾아갔어요. 사슴을 어떻게 잡는지 보여주더군요. 석기시대 돌멩이를 놓고 도축장 사람들과 함께 사슴을 어떻게 잡았을까 토론하기도 했지요.”

학위가 끝나갈 무렵 ‘JPAC에서 인류학자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났다. 그의 친가 및 외가의 조부모는 모두 평안북도 출신으로 1·4후퇴 때 피란온 실향민이었다. 전사자 발굴이 더욱 특별히 다가왔다. 한국전 실종자 발굴이 JPAC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이기에 한국어를 하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JPAC는 이례적으로 외국인인 그를 채용했다.

JPAC에는 실종 병사를 찾기 위한 최정예 군인 및 민간 연구자가 400여 명 근무한다. 전쟁사 전공자가 실종 경위와 위치를 파악하면 고고학자와 군인이 현장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학자 인류학자 법의학자 등이 신원을 확인한다.

“이곳서 일하면서 미국이 참 대단한 나라라고 느껴요. 정말 철저히 기록을 남겨두죠. 60년 전 한국전 실종자도 실종 당시 상황과 지역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어요. 뼈를 발견하면 우선 실종지역에 맞춰 후보군을 추리고 DNA를 분석해 실종자 가족과 비교하죠. 치아도 좋은 증거예요. 병사들의 충치 부위까지 세밀하게 기록된 60년 전 미군 자료를 보며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JPAC는 한국군과도 공동으로 유해발굴작업을 한다. 한국군 유해도 상당수 발견되지만 기록이 너무 빈약해 신원을 확인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한다.

“의미 없던 뼛조각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누구인지 밝혀지는 거죠.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스러진 젊은이에게 국가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지요. 유해를 찾게 된 가족들이 ‘고맙다’며 보내온 카드를 볼 때면 ‘인류학처럼 먹고사는 데 관련 없는 학문을 해서도 이렇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뿌듯해요.”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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