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는 일본에 침뜸술 전파한 통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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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정식 경희대 교수 논문

양국 의관 문답집 분석
18세기 의학교류 실태 밝혀


임진왜란을 전후해 한국의 침뜸술은 크게 발전했다. 허준이 ‘동의보감’에서 침구편을 따로 저술했고, 허준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허임은 임상경험을 담은 ‘침구경험방’을 발간했다. 그러나 일본은 침뜸과 관련된 제도가 폐지돼 겐로쿠(元祿)시대(1688∼1704) 전까지는 관학 주도의 침뜸 의학은 정체됐다.

조선통신사는 일본 의사들에게 조선의 침뜸술을 전파하는 통로였다. 30일 부산대에서 열리는 조선통신사학회의 국제학술대회 ‘조선통신사와 한일 문화교류’에서는 함정식 경희대 교수가 논문 ‘조선통신사의 침뜸 의학 교류’를 통해 그 실태를 들여다본다.

함 교수는 이 논문에서 ‘양동창화후록(兩東唱和後錄)’을 분석했다. 1711년 신묘사행 당시 일본의 의학자 무라카미 다니오가 조선 의관 기두문과 나눈 문답을 기록한 문서다.

이 문답에서 기두문은 침술을 놓는 방법과 공부법을 알려준다. 함 교수는 “시침((시,저)針·종기를 긁어내는 외과 치료에 사용하던 침), 봉침(H針·칼날 모양의 침) 등 다양한 침을 사용하던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호침(毫針·매우 가는 침으로 현재 사용하는 침과 유사)을 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기두문은 또 ‘신응경’과 ‘의학입문’을 침뜸술을 익히는 교재로 제시했다. 이 중 ‘의학입문’은 침뜸술 서적이 아닌 종합의서로 의학을 유학과 연관시켜 이론적으로 이해했던 조선 의학계의 경향을 보여준다.

무라카미는 혈자리 선택, 자침(刺針·벌침)의 깊이 등에 관한 질문을 한 뒤 임상경험집을 보여주며 시비를 가려달라고 한다. 함 교수는 “이 임상경험집은 병을 치료하는 요점이면서도 가려내기 어려운 혈자리 50여 개를 모아 만든 책자”라며 “자신의 의학적 수준을 은근히 자랑함으로써 조선 의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도는 무라카미가 스승이 조선 의관임을 밝히는 첫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이 외에도 손순옥 중앙대 교수는 당시 하이쿠 속에 나타난 조선통신사의 영향을 살핀 ‘조선통신사와 하이쿠’를, 오쓰보 후지요(大坪藤代)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립 단기여대 교수는 조선통신사를 어떤 음식과 절차로 대접했는지를 살핀 ‘조선통신사 향응식의 의의’ 등을 발표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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