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 “날아라!슈퍼요트” 집단가출호 1등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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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14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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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이 나그네길…”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바닷길. 故 김현식의 노래 ‘이별의 종착역’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새벽 4시 목포 삼학마리나를 떠나 10시간만인 오후 2시께 추자도 서쪽 해상을 지날 때쯤부터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한 제주도는 가도 가도 도무지 가까워지질 않았다.

“배가 가긴 가고 있나? 제 자리 걸음인 것 같은데?”

근무 교대로 선실에서 쪽잠을 자다 갑판으로 나온 허영만 선장이 부스스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눈 쌓인 겨울산을 오르다보면 빤히 보이는 지점이 아무리 가도 끝이 없는 경우가 있다. 멀고 가까움을 판단할 기준점들이 눈에 덮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 현상. 바다는 산보다 훨씬 더 원근을 가늠하기 어려워 제주도는 몇 시간째 신기루인 듯 그 자리였다.

수평선뿐인 망망대해. 다행히 이번엔 외롭진 않았다. 집단가출호 외에 3척(이루리호, 등대1호, 등대2호)의 동호인 요트가 동참해 제주항 서쪽 도두항을 목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바다를 헤쳐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엔진을 켜 앞서가던 등대 1, 2호는 오후 4시쯤 시야에서 사라졌고, 우리 뒤로 따라오던 이루리호는 제주도로 향하는 동쪽 조류를 이용하기 위해 방향을 틀어 결국 해가 질 무렵 바다엔 다시 우리뿐이었다.

날이 저물며 바람은 강해졌고 너울도 크게 일었다. 어두운 수평선 위로 제주도의 휘황한 야경이 흔들린다. 제주가 가까워질수록 눈부신 집어등을 밝힌 갈치잡이 어선들로 불야성을 이뤄 바다는 어지러웠다.

한 발 앞서 간 등대 1호와 2호가 제주항 부근에서 도두항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다는 무전 연락을 보내왔다. 5초 간격으로 백색 등을 깜빡이는 도두항 등대를 찾아야했다.

그러나 육상의 수많은 불빛과 갈치배 선단의 집어등이 혼재하는 가운데 특정한 등대불빛을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과도 같았다.

심지어 제주공항 관제탑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 헤드랜턴을 켜고 해도를 들여다보지만 아무래도 불빛이 많아 헷갈린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정보를 무시하고 오로지 GPS와 나침반에 의존해 갈치배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거친 바다를 헤쳐갈 수밖에 없다.

결국 도두항을 5마일 여 앞두고서야 제주공항을 이착륙하는 여객기들을 단서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목포를 떠난 지 17시간 30분만인 오후 9시 30분, 마침내 도두항 골인. 항구에는 표연봉 씨 등 제주도요트협회 관계자들과 이종량, 강성규(한라산산악구조대장), 김형우 씨 등 제주도 산악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튿날 오전 제주도 세일러 강종욱 씨의 30피트 급 크루저 1대까지 가세해 총 5척의 배가 출전한 가운데 도두항~탑동 구간에서 친선 레이스가 벌어졌다. 우승 상품은 제주관광대학교 김기윤 교수(대한요트협회 이사)가 쾌척한 제주산 한치 한 상자.

집단가출호는 독도까지 가는 도중 항해 기량도 점검할 겸 각 지역에서 열리는 요트 레이스에 출전할 계획이었으나 10월에 예정된 굵직한 레이스들이 신종 플루 탓에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아쉬움이 컸던 차였다.

탑동 등대까지 간 뒤 등대 앞에 설치한 부표를 세 바퀴 돌고 다시 도두항으로 돌아오는 레이스 코스다. 그저 친선 레이스일 뿐이어서 다른 배들은 주말 세일링처럼 천천히 바람을 탔지만 집단가출호 대원들은 허선장의 지휘 아래, 마치 국제대회라도 되는 양 풍향에 따라 온갖 돛을 다 활용하며 일사불란한 경기를 펼쳤다. 결과는 집단가출호의 우승.

레이스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모두들 집중한 덕분이었다.

레이스를 즐기느라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도두항을 떠날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인 화순항까지는 약 40마일. 도두항을 빠져나오자 1.5m의 파도로 바다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제주 해안을 왼쪽에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애월을 지나고 비양도를 지날 때 해는 또 다시 바다로 잠겼다. 비양도 부근에서 낚싯배 한 척을 만났다. 새카맣게 그을려 첫 눈에 내공 있어 보이는 어부 두 분이 파도에 춤추는 배 위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가 우릴 보자 친절하게도 귀한 참돔 몇 마리를 선물로 던져주신다. 가진 게 없는 우리는 고마움을 과일로 보답했다.

선물 받은 참돔으로 회를 뜨고 있을 때 허 선장의 휴대전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뭐? 오호, 보인다, 보여.”

해안도로로 차를 몰고 따라온 이종량 씨가 한림 부근 해변에서 우릴 위해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었던 것. 폭죽 세리모니는 10여분 간 계속됐고, 우리는 그 쪽에서는 보일 리 없는 해안을 향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댔다. 비록 거친 바다에 떠있지만 해안이 지척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뒷바람을 받고 달리는 배의 갑판 위는 긴장으로 팽팽했다. 와일드 자이빙(뒷바람에 의해 돛이 갑자기 돌아가는 것)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와일드 자이빙이 일어나면 바람의 속도로 돌아가는 금속 붐에 맞아 야구 방망이에 맞은 타구처럼 어둡고 차가운 바다로 나가떨어질 수도 있었다.

높은 파도를 뚫고 모슬포를 지나 시속 9노트로 달려 오후 9시에 삼방산 밑 화순항에 입항했다. 화순항은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 마라도의 바로 턱 밑에 있는 어항. 가파도가 코 앞이고, 10마일 남짓 떨어진 마라도도 훤히 바라다 보인다. 방파제에 텐트를 치고 우승 상품으로 받은 한치를 회, 숙회, 볶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저녁을 먹고 삼방산에 걸린 하현달을 바라보며 잠들었다.

새벽 일찍 서둘러 마라도를 향한다.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이 도착하기 전, 호젓한 마라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은 탓에 선착장에 배를 직접 댈 수가 없어 4명만 고무보트를 타고 섬에 상륙하기로 했다.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에 학생은 단 둘 뿐이다. 2학년 여학생 혜빈이, 수진이. 마중 나온 혜빈이에게 허영만 선장의 사인이 적힌 ‘식객’ 한 질을 선물하고 마라분교 교정 등을 둘러본다.

마라도 남서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유치원 크기의 초등학교가 영화 세트처럼 단출하고 정겹다. 바람이 심한 탓에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마라도는 집이나 길이 아닌 곳은 모두 잔디나 억새가 자라고 있어 마치 스위스 어느 마을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뜀박질로 30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섬엔 몇 년 전부터 유명해진 자장면집이 여럿 보인다. 유람선을 이용해 온 관광객들이면 누구나 먹는다는 마라도 자장면. 배에 남아있는 대원들을 위해 12그릇의 자장면을 포장해 섬을 떠났다. 마라도를 선회하며 기다리던 나머지 대원들은 우리 손에 들린 자장면을 보고 환호했다.

6월에 시작한 항해는 어느덧 누적 거리 1000km를 훌쩍 넘어 이제 국토 최남단까지 진출했다. 이제 겨울 동안 집단가출호는 제주도를 돌아 여수, 남해, 통영, 마산 부산 등 남해 다도해 수역을 동진해 포항까지 진출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 항해는 추위, 그리고 강한 북서계절풍과의 치열한 싸움이 될 터였다.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송철웅
사진 |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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