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과 非조각, 경계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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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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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에 선보인 오유경 씨의 ‘큐브먼트’. 종이로 만든 정육면체들이 선풍기 바람에 흩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에 선보인 오유경 씨의 ‘큐브먼트’. 종이로 만든 정육면체들이 선풍기 바람에 흩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천장에 대롱대롱 길게 매달린 헤어드라이어가 가끔씩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작동하고(정승), 바닥에 놓인 선풍기는 바람을 일으키면서 A4용지로 만든 정육면체들을 공중으로 떠오르게 만든다(오유경). 한쪽에는 거대하게 부풀린 투명한 비닐 봉투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오니시 야스야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열리는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전은 전시제목처럼 조각의 본질적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조각적인 것과 탈조각적인 것,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서 실험하는 작가 22명은 ‘덩어리’로 존재하는 전통 조각에서 벗어나는 입체작품 50여 점을 선보였다. 육중한 기념비적 조각에서 가변적 형상과 개념으로 변화하고 확장하는 조각의 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는 세 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중력과 장력 등에 저항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을 모은 ‘힘의 자장-불안한’, 버려진 오브제와 가볍고 부드러운 물체의 특징을 활용한 작품을 만나는 ‘물질적 상상력과 오브제-사소한’, 공기와 바람 등을 이용하는 비물질화 경향의 작업을 선보인 ‘기화하는 조각-유동적인’ 등. 각 섹션은 조각적 실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사적인 감성과 소소한 일상을 표현하는 현대미술의 단면을 드러낸다.

경쾌한 감성과 진지한 사유를 결합한 작품들은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박원주 씨는 허무한 희망의 덩어리를 흰 종이로 만든 ‘희망봉’으로 표현하고, 비누를 가시처럼 뾰족하게 깎아 설치한 김시연 씨의 ‘가시’는 겉으론 평온한 가정에 도사린 우울함과 불안감을 엿보게 한다. 천영미 씨의 ‘세컨드 플로어’는 균열이 보이는 시멘트 바닥으로 우리가 딛고 사는 현실의 불안정함을 드러낸다. 최종운 씨는 동파이프와 냉동장치를 이용한 반어적 설치작품 ‘This is hot’을 통해 생태와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드러낸다.

조각과 회화, 입체와 평면 등 장르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의 미술. 그 속에서 직립 형태의 모더니즘 조각과 차별화되는 실험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이뤄지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내년 2월 16일까지. 700원. 02-2124-88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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