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무대로 옮겨간 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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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일 15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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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직조된 엄마 이야기가 배우의 몸을 빌려 연극 무대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올해 9월, 출간 10개월 만에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같은 제목의 연극으로 2010년 1월 29일~3월 23일 서울 세종M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의 흔적과 가족들이 복기해 낸 기억이 퍼즐처럼 결합하며 잊혀져버린 엄마를 그려가는 소설이 연극으로는 어떻게 태어날까. 배우 정혜선 씨가 엄마를 맡았고, 딸 서이숙, 아들은 길용우, 남편으로 심양홍 씨가 출연한다.
소설가 신경숙 씨(46)와 연극의 연출을 맡은 고석만 씨(61)가 최근 서울 삼청동 북 카페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고 씨는 MBC PD 출신으로 '수사반장' '제1공화국' '야망의 25시' '땅' 등 사회성 짙고 선 굵은 드라마를 만들었다. EBS 사장, MBC 특임이사,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을 지냈다. 연극 연출은 이번이 처음.
고 씨가 "(연극 작업이) 무척 긴장되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신 씨는 "어머, 선생님이 떨리신다고요?"라며 까르르 웃었다.
신경숙='엄마를 부탁해'는 원래 연극 무대를 생각하면서 썼다. 딸, 아들, 남편이 한 사람씩 무대에 서서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엄마를 복원해가는 형식이다.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니 기뻤고 또 그만큼 궁금하다.
고석만=소설을 무대로 옮기면 연극이 되는 작품이지만 그렇게 하면 연출자의 역할이 없어지지 않겠는가.(웃음) 고민이 많았다. 각색을 통해 특별한 변화를 줘야 하나, 엄마의 엄마(딸의 외할머니)를 40대 때 모습으로 등장시켜볼까…. 5개월 간 작품을 샅샅이 분석한 결과, 원작의 향기를 살리는 쪽으로 결정했다. 방송국에 오래 몸담았기 때문에 영상을 얼마나 사용할지도 고민했지만 거의 안 쓰기로 했다.
신=좋다.(웃음) 작가는 원작의 사용 여부를 두고 심사숙고하는 데서 그 역할이 끝난다. 장르가 달라지면 문법도 달라지니까. 다만 엄마를 주제로 한 지금까지의 연극에서 한 발짝 나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고=원작에서 너, 그, 나로 화자가 변하는 구성은 연극에도 어떻게든 도입해보려 했는데 역부족이었다. 관객을 울려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연극이 끝난 뒤 운전석에 앉았을 때 잠깐 시동을 걸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지게 만들고 싶다.
신=기존 연극과 다른 점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또 연극을 만들겠는가. 눈물이 쏟아지지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성찰하게 해준다면 그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원작과 연극이 함께 해서 또 하나의 다른 큰 작품이 되는 것 같다.
고=연극은 끊임없이 보완 발전해 나가는 게 장점이고 문학과 다른 지점인 듯싶다. 무대에서는 그날 습도에 따라서도 디테일이 달라진다는 농담이 있다. 연극은 협업이다. 며칠 전 오후 1시에 시작한 독회가 밤 11시 넘어 끝났다. 엑스트라가 제안을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신=혼자 하는 일을 하려고 작가를 택했는데….(웃음)
두 사람은 모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한 시대라는 점에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커피와 캐모마일 차가 다 식어가도록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 신 씨는 "참, 인터뷰라는 것도 까먹고 우리가 한 없이 얘기하고 있네요"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고=원작 독자가 100만 명 이상이라 힘이 되기도 하고 압도당하기도 한다. 나는 여덟 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건강 때문에 출산을 말리는 의사의 권고에도 나를 낳으셨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내게 눈물이었다. 환갑이 넘어 이 작품과 인연이 닿아 진정한 모성을 깨닫게 됐다. 모성이 특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신=엄마를 '내 엄마'로만 생각하면 이기적으로 보인다. 나만 사랑해야 하고. 소설에서 엄마 '박소녀'는 넓은 사랑을 베푼다. 보육원에 매달 돈을 보내고 시동생 균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장면은 의도적인 설정이었다. 엄마가 화자로 등장하는 4장이 어떻게 표현될지 가장 궁금하다.
고=그 후반부가 연출자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엄마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전반부에 장치해뒀고 후반부에서는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회적 강요로 압박 받는 엄마, 그런 엄마로부터 배려 받는 자식 간 간극에서 생겨나는 공허함을 무대에 고스란히 담고 싶다.
신=우리는 엄마를, 원래 엄마로 태어난 사람처럼 대한다. 그런 게 깨졌으면 좋겠다. 나는 글을 쓸 때 설득, 설명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이 스며들어 마음이 정화됐으면 좋겠다. 문학과 달리 연극은 직접 보여주는 장르라는 점이 흥미롭다. 울타리 안, '내 새끼'를 넘어서는 모성을 이 연극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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