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욕망의 돌탑 파고든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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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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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서부 해안에 자리한 피에트라산타. 대리석 산지로 알려진 카라라와 인접한 이 마을은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를 비롯해 마리노 마리니, 후안 미로, 헨리 무어 등 20세기 대가들이 작업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조각가 박은선 씨(44)는 1993년부터 이곳에 살면서 유럽에서 활동하고 인정받는 작가다.

두 가지 돌을 붙인 석재 토막을 기둥을 조립하듯 쌓아올리는 그의 기하학적 조각을 선보이는 전시가 27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선화랑이 제정한 제21회 선미술상의 수상 기념전으로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25점을 전시 중이다.

그의 조각은 원구가 연결된 구축적인 무한기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시를 위해 귀국한 작가는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출세와 성공에 욕심이 있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작업에 대한 욕심이 커지더라. 인생에서 끝없이 뭔가를 추구하는 욕망을 무한 기둥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카라라국립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했다.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귀국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조각의 본고장에서 뿌리 내리겠다’는 다짐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3년 전 피에트라산타시가 주최하는 야외조각전에 초대받으며 유럽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올해 피렌체의 마리노 마리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기에 이르렀다.

세련된 추상조각이면서도 직선과 곡선이 공존하는 동양적 사유가 깃든 그의 작품에는 늘 깨어진 틈새가 보인다. “돌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지와 자연의 숨결로 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균열을 ‘숨통’이라고 부른다.”

대리석과 화강암 등 두 가지 빛깔의 돌을 사용해 마음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작가는 처음 한 덩어리였던 원석을 해체한 뒤 다시 붙여 한 덩어리를 만든다. 해체와 구축의 고된 작업과정을 설명하던 그는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인생과 같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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