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박물관 100년]왕의 궁궐, 백성들에게 문을 열다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코멘트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에 제실(帝室)박물관이 개관한 지 100년. 20세기 근현대사만큼이나 지난했던 과정을 거쳐 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맞춰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어령)는 23일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이 위원장은 “박물관의 활성화는 미래를 여는 지적 자양분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박물관 100년의 흐름과 그 의미, 이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소개한다.》

1909년 11월 1일 창경궁 제실박물관이 공식 개관하면서 근대적 박물관의 역사는 시작됐다. 한 해 전부터 각종 전시 유물을 수집해 체계적인 컬렉션을 만들고 이것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근대 박물관의 효시로 평가받는 것이다.

○ 여민해락의 정신

제실박물관 개관은 당시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임금이 사는 궁궐에 백성들이 공공연히 드나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박물관 100주년 기념사업을 이끌고 있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그것이 바로 ‘여민해락(與民偕樂)’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여민해락’은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

“1909년에 박물관을 국민에게 개방하는데 순종의 역할이 컸어요. 국민을 파트너로 생각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일제 침략의 일환으로 보기도 하지만, 제실박물관은 일제의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흡수되지 않고 독립된 길을 갔습니다. 따라서 제실박물관은 우리의 소중한 박물관의 역사입니다.”

제실박물관은 국권 상실과 함께 이씨 왕가의 박물관이라는 의미의 ‘이왕가박물관’으로 이름이 격하됐다. 이후 이왕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1969년 국립박물관에 통합됐다.

제실박물관은 다양한 문화재를 수집해 근대적 컬렉션의 한 축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보 83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해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미술 명품들은 대부분 이때 구입한 것들.

○ 민족 문화의 파수꾼

일제강점기 들어서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더욱 기승을 부렸지만 이에 맞서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확산됐다. 당시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 간송 전형필(1906∼1962). 그는 엄청난 사재를 털어 한국 최고의 문화재 명품을 수집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국보 68호) 등 각종 도자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등 회화의 명품,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 등. 그는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이라는 미술관을 세웠다. 지금의 간송미술관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셈이다.

창경궁 제실박물관이 최초

1938년 간송이 세운 보화각
사립 박물관의 첫발 내디뎌

1970년대 南北 정통성 경쟁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후
본격적인 박물관 시대 열려

○ 남북 정통성 경쟁의 무대

1945년 문을 연 국립박물관은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뀐다. 왜 그랬을까. 최광식 관장의 설명이 흥미롭다.

“그건 평양에 있는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죠. 평양의 박물관이 중앙이면 우리 박물관은 지방이란 말인가, 이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에 중앙을 넣었던 것이죠.”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 박물관은 남북한 정통성 경쟁의 무대였다. 최 관장은 “1945년 12월 3일 우리가 국립박물관을 개관하고 북한에서 이틀 전인 12월 1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개관한 것이나, 1957년 우리가 해외전시를 할 때 북한도 유럽 소련 전시를 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 한국 박물관의 도약과 기증문화 확산

1980년대에 들어서면 한국의 박물관은 양과 질에서 크게 도약한다. 우선 1982년 호암미술관, 호림박물관의 개관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명품 컬렉션, 고품격 전시, 체계적인 연구 등으로 한국 박물관의 위상을 드높였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지방의 공립 박물관, 테마 중심의 작지만 알찬 사립박물관과 미술관이 급속히 늘어나는 등 양적 팽창도 이뤄졌다.

기증문화의 확산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1970년대 의사였던 수정 박병래의 도자기 기증, 1980년대 사업가였던 동원 이홍근의 명품 기증 등을 계기로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화재 기증이 줄을 잇고 있다. 1946년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사례는 240여 명의 2만800여 점에 이른다.

현재 전국의 박물관은 600여 곳. 지금의 과제는 친근한 박물관, 찾고 싶은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국가브랜드의 상징 공간이자 국가브랜드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문화계가 박물관에 거는 기대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