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수같은’ 모녀… 웃다보면 눈가에 이슬이… 영화 ‘애자’

  • 입력 2009년 9월 15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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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수술을 권하는 딸에게 엄마는 “니 하는 일 힘들지 않나?”라고 말한다. 9일 개봉한 영화 ‘애자’에서 딸 애자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택하려는 엄마를 그제야 이해한다. 사진 제공 이노기획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며 수술을 권하는 딸에게 엄마는 “니 하는 일 힘들지 않나?”라고 말한다. 9일 개봉한 영화 ‘애자’에서 딸 애자는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죽음을 택하려는 엄마를 그제야 이해한다. 사진 제공 이노기획
여고 시절 ‘짱’으로 불리던 박애자(최강희)는 ‘신이 내려준 글 솜씨’를 믿고 작가를 꿈꾸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스물아홉 사고뭉치 백수 처녀. 골목에서 여고생과 ‘맞짱’ 뜨다 철창 신세를 진다. 애자의 엄마 최영희(김영애)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수가 뒤틀리면 화투판을 뒤집기 일쑤인 그는 철창에 들어간 애자의 생니를 뽑아 합의금을 받아낸다. 자식에게 주는 김치는 안 아까워도 화장품 나눠 주기는 아까워하는, 그런 엄마다.

9일 개봉한 영화 ‘애자’(15세 관람가)는 철부지 딸 애자와 꼬장꼬장한 엄마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어느 날 엄마의 암이 재발한 뒤 뒤늦게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줄거리에는 새로울 게 없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수술을 거부하는 엄마, 울면서 설득하는 딸, 결국 수술을 받지만 고통 속에 죽어가는 엄마…. 중반부터 영화는 ‘최루성 드라마’의 수순을 따른다.

그런 영화의 재미는 지지고 볶는 모녀간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인터넷 메신저로 처음 엄마와 대화를 할 때, 엄마의 손 글씨로 적힌 쪽지를 받았을 때, 그냥 ‘엄마’인 줄만 알았던 엄마가 같은 여자이자 친구로 느껴질 때의 가슴 짠해지는 경험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평생 ‘웬수’라고 생각했던 엄마와 딸이 복닥거리는 장면들에서 부담 없이 웃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정기훈 감독은 서른다섯 살 총각. 모녀 400쌍을 취재해 시나리오를 썼다. 애자는 정 감독의 여성 친구 한 사람이, 애자의 엄마는 정 감독의 어머니가 모델이 됐다.

무겁고 슬픈 이 영화가 단지 관객을 감상에 젖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 건 생선처럼 팔딱거리는 캐릭터 덕이다. 여주인공 애자 역의 최강희는 때론 거칠고 때론 귀여운, 한국영화에서 흔치 않은 희귀종 캐릭터를 소화했다. 치고받으며 티격태격하는 모녀의 연기 호흡도 좋다. 무엇보다 무뚝뚝한 듯 끈적한 정이 묻어나는 부산사투리가 아니었다면 영화의 재미가 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투리에 익숙하지 못한 관객은 여러 재미있는 대사를 흘려듣기 쉽다.

기자 시사회와 상영관의 반응은 달랐다. 기자 시사회는 절간처럼 고요했지만 개봉 후 찾은 극장에서는 쓰러지기 직전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는 장면부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배우들이 너무 울어서 따라 울게 되는 눈물의 전염효과 탓도 있겠지만, 극중 모녀의 징글징글한 모습이 엄마 생각을 간절하게 만드는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동아일보 염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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