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너절한 일상을 벗어나고픈 자매들의 몸부림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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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이 4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왼쪽부터 마샤 역의 계미경, 올가 역 권복순, 이리나 역 곽명화 씨. 사진 제공 국립극단
국립극단이 4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왼쪽부터 마샤 역의 계미경, 올가 역 권복순, 이리나 역 곽명화 씨. 사진 제공 국립극단
서울 명동예술극장 ‘세 자매’ 13일까지

국립극단이 42년 만에 공연하는 연극 ‘세 자매’는 너절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 안에서 맴돌 뿐인 우리 삶을 거울처럼 비춘다. 지루하고 어리석은 인생을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지만 어쨌거나 살아가야 하니까.

프로조로프가의 세 자매 올가(권복순), 마샤(계미경), 이리나(곽명화)는 러시아의 지방 소도시에 산다. 교사인 올가는 학교에서 젊음과 열정을 잃어간다고 여긴다. 마샤는 졸업하자마자 ‘가장 똑똑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이제 그의 말과 행동에 짜증만 난다. 일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었던 이리나는 전신국 업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 안드레이(노석채)는 교수가 되리라는 누이들의 꿈을 저버리고 시의원이 된 뒤 도박에 빠졌다.

이번 공연에서 무대는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다. 거실, 뜰, 올가와 이리나의 방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눴지만 격자무늬 창을 통해 다른 공간에서 움직이는 인물까지 보인다. 거실에서 말싸움을 벌이다 격노한 솔료늬이(서상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관객은 그가 문을 열고 나가는 데 이어 인상을 찌푸린 채 뜰을 지나가는 모습도 계속 지켜보게 된다. 세 자매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거실에서 나타샤(이은희)는 소등하는 하녀들을 꾸짖고 뜰에선 군인들이 잡담을 한다.

안드레이와 결혼한 나타샤가 집안의 실세로 부상하면서 자매들의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마침내 마지막 부분에서 마샤가 사랑한 군인이 떠나가고 이리나와 결혼을 약속한 뚜젠바흐 남작이 결투에서 죽은 뒤 구조물은 공중으로 사라지며 무대는 휑한 겨울의 뜰로 바뀐다. 이별 뒤의 허무가 가득한 공간이다.

막이 오르기 직전 안내방송이 나왔다. “공연시간은 휴식시간 15분을 포함해 3시간입니다.” 관객석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연극이 끝난 뒤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모 안피사 역을 맡은 원로배우 백성희 씨(84)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이 연극 자체에 보내는 갈채였다. 1967년 국립극단이 이 작품을 국내 초연할 때 백 씨는 나타샤 역을 했다. 1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중학생 이상. 02-2280-4115∼6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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