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비는 고대사회 읽는 ‘창’

  • 입력 2009년 9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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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에서 우연히 발견된 중원고구려비.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석비를 우물가 빨래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79년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에서 우연히 발견된 중원고구려비.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석비를 우물가 빨래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토확장 왕의 위업부터 재산 다툼-공사 내용까지

올해 5월 경북 포항시의 도로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중성리 신라비(501년 또는 441년), 이달 초 경북 경주시의 한 주택 마당의 수돗가에서 발견된 신라 문무왕릉비(682년)의 몸체 윗부분. 우연히 발견된 사연도 흥미로운 데다 중성리비의 경우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확인되면서 고대의 석비(石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영토 확장에서 공사서약 내용까지=지금까지 확인된 고대 석비는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414년·중국 지린성)와 중원 고구려비(국보 205호·5세기 말·충북 충주), 신라의 단양 적성비(국보 198호·6세기 중엽·충북 단양), 북한산 진흥왕순수비(국보 3호·560년경·국립중앙박물관), 창녕 진흥왕순수비(국보 33호·6세기 중엽·경남 창녕), 봉평 신라비(국보 242호·524년·경북 울진), 영일 냉수리 신라비(국보 264호·503년·경북 포항), 남산 신성비(591년·경북 경주), 북한에 있는 마운령과 황초령 진흥왕순수비(6세기 중엽·함경남도 함흥본궁), 백제의 사택지적비(654년·국립부여박물관).

이 가운데는 중원 고구려비, 단양 적성비, 진흥왕순수비처럼 영토 확장을 기념하며 세운 것이 가장 많다. 순수(巡狩)는 국왕이 나라 곳곳을 살피며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냉수리 신라비와 이번에 발견된 중성리 신라비의 비문엔 재산과 상속 문제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남산 신성비는 성을 쌓으면서 3년 안에 성이 무너지면 죄를 묻겠다는 것을 서약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택지적비는 사택지적이라는 백제 귀족의 심경을 기록한 특이한 내용의 석비다. 늙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불교를 잘 믿겠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석비는 문헌자료가 절대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다. 대부분 국보로 지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석비 두 점의 처리=문화재청은 경주의 한 주택 수돗가에 시멘트로 박혀 있는 문무왕릉비 윗부분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처리하고, 그 대신 소유자에게 보상을 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의 심영섭 발굴제도과장은 “개인 소유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점유해온 이상 개인 소유로 봐야 할 것 같다”며 “전문가들이 모여 석비의 가격을 평가한 뒤 이에 맞게 보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성리 신라비를 발견한 주민에게도 같은 절차를 거쳐 보상금이 돌아간다. 그러나 석비에 대한 감정평가 전례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액수가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중성리비는 가장 오래된 신라비로 밝혀졌기 때문에 국보 지정이 유력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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