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애절한 사랑’ 이야기 전개엔 아쉬움

  • 입력 2009년 9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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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한일 공동 창작 뮤지컬 ‘침묵의 소리’. 사진 제공 서울시뮤지컬단
‘아시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한일 공동 창작 뮤지컬 ‘침묵의 소리’. 사진 제공 서울시뮤지컬단
한일 합작 뮤지컬 ‘침묵의 소리’
‘전쟁의 비극’ 호소력 짙은 음악 감동

4일 개막한 한일 공동제작 뮤지컬 ‘침묵의 소리’는 두 개의 시공간을 한 무대에 병치시킨다. 양쪽은 각각 ‘침묵’과 ‘소리’를 대표한다. 침묵의 공간은 60년간 말을 잃고 일본의 한 정신병동에 입원 중인 80대 노인 가네다 도우신의 공간이다. 소리의 공간은 1940년대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가 강제 징용돼 동남아 전장으로 끌려간 20대 청년 김동진의 공간이다.

침묵의 공간은 사실의 공간이다. 가네다는 태평양전쟁에 끌려갔다 온 뒤 실어증에 걸려 정신병동에서 침묵을 지키다 외롭게 숨진 재일교포 김백식 씨를 모델로 했다. 소리의 공간은 상상의 공간이다. 가네다의 영혼이 깊은 침묵 속에 빠지도록 만든 전쟁의 상흔을 미루어 더듬는다.

주로 일본 배우들이 맡은 침묵의 공간이 연극적이었다면, 한국 배우들이 맡은 소리의 공간은 뮤지컬의 문법에 충실했다. 대조적인 두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음악이다. 젊은 시절 동진이 어머니에게서 배웠던 가야금 음률이나 동진이 친구들과 함께 불던 풀잎피리의 음악이다. 일본 작곡가 우에다 도루가 작곡한 주제곡 ‘침묵의 소리’의 애절한 선율이 특히 큰 역할을 한다.

소리의 공간 대부분을 채우는 한국 작곡가 장소영 씨의 음악은 서정미와 힘을 함께 보여준다. 동진을 사랑하는 일본 처녀 미와가 부르는 ‘어쩌나요’나 동진과 친구들이 합창하는 ‘풀잎의 노래’는 서정적이다. 합창곡 ‘학도병의 노래’와 ‘분노’는 힘차다. 동진 역의 민영기 씨는 이런 소리의 공간을 폭발적 가창력으로 지배한다. 극 초반 듀엣과 합창곡에선 발톱을 감춘 호랑이처럼 노래를 얼러대다가 후반부에선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포효한다.

작품의 이 같은 음악적 성취에 비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옥에서 생환한 동진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미와(우현아)를 잃는다는 상황논리에 빠져 정작 그들의 구체적인 사랑은 상투적으로 그려졌다. 그들의 애절한 사랑을 상징해 한 쌍의 학으로 분장한 무용수가 등장하지만 이 장면에서 객석이 웃음을 터뜨린 점은 이를 대변한다. 가네다(가나오 데쓰오)와 그를 돌보는 간호사(가타키리 마사코)의 애틋한 교감도 이를 뒷받침할 에피소드가 부족해 관객의 공감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했다.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과 공동 연출을 맡은 일본 긴가도 극단의 시나가와 요시마사 대표는 이 작품이 ‘아시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했다. 양국 간 역사 인식의 미묘한 차이를, 또한 언어와 문화의 격차를 뛰어넘고 제작된 이번 작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탄탄한 음악을 토대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더욱 섬세하게 구축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어 보인다.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02-399-1772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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