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성자의 또 다른 이름, 농부… 전민조 사진전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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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봄, 전북 남원시 대산면 풍촌리를 지나는 버스에 탔던 한 사진가. 차창 밖으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고 가뭄을 적시는 단비소리에 빠져든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거운 쟁기를 들고 논두렁으로 향하는 농부를 본 순간, 그는 버스에서 내려 단숨에 농부를 쫓아갔다. 마치 가족인 양 누렁소에게 우비를 입혀준 농부는 쟁기질에 들어갔다. 찰칵, 찰칵. 그가 빗속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던 농부. 잠시 일손을 멈추고 허허 웃었다. “무슨 사진을 그렇게 찍소”라고 말하곤 다시 일에 몰두했다.

“자연의 농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농부의 선한 마음과 영혼에 반해버렸다.”

사진기자 출신 사진가 전민조 씨에겐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자 같았던 그 얼굴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 ‘농부’란 제목의 사진집(평민사)과 사진전(10∼23일·서울 중구 저동 금풍빌딩 갤러리 M·02-2277-2436)을 통해서다. 이 사진을 계기로 그는 농부란 주제에 빠져들었다. 씨 뿌리는 사람들, 흥에 겨워 장구를 두드리는 사람들, 흙을 사랑하다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렌즈에 잡혔다. 문학평론가 천승준 씨는 사진을 보고 말했다. ‘그가 바라본 우리 농부의 얼굴, 그 희로애락의 표정은 우리들에게 그 순후한 모습에서 평생 하늘을 우러러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정직하고 강건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성스러움을 보여준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을 담은 기록으로서의 가치도 크지만 그의 사진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땅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농부의 ‘마음’을 길어올린 사진이란 점이다.

“경제적 성공에 눈이 먼 시대에 자연에만 몸을 맡기고 웃고 있는 농부란 직업에 무한한 존경심을 느낀다. 농부는 군자 같은 직업이며 유순한 소 역시 내게는 군자 같은 동물로 보인다.”

특별한 사건, 극적인 순간을 찾던 사진기자는 농부를 찍으며 평범함 속에 숨은 소중한 가치를 깨우친다. 그 깨달음 덕분에 ‘부드럽고 거룩한 자연이 만든 얼굴’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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