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벌거벗은 도시를 찍다

  • 입력 2009년 8월 28일 02시 59분


미술가 김미루의 사진전 ‘나도의 우수’

한때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기차역과 공장 등 도시의 산업시설. 지금은 용도 폐기된 공간이라 무거운 정적만 흐른다. 한데 버려진 풍경 속에서 얼핏 시선을 붙잡는 존재가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대형 사진의 한구석에 젊은 여인이 알몸으로 서있거나 웅크리고 있다. 원래 그곳에 존재했던 양 쇠락한 공간에 자연스레 스며든 가녀린 몸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거나 너무도 작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관능적이기보다 황무지에서 피어난 작은 풀꽃처럼, 버려진 풍경에 생명의 온기를 보태는 유기체로 다가온다.

9월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현대 강남(02-519-0800)에서 열리는 김미루 씨(28)의 첫 개인전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은 젊은 작가의 파격적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 씨의 막내딸. 미국 컬럼비아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체로 사진을 선택했다.

거대 도시에 감춰진 폐허와 구조물, 접근 금지된 장소를 찾아가는 ‘도시 탐험’에 매료된 작가. 2005년부터 터널 하수도 지하묘지 조선소 등을 찾아간 뒤 공간에 스스로 들어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익명의 군상으로 가득한 일반적인 지상 공간에서 벗어날 때마다 자유로워지고 새로이 태어나는 것 같았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그는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 카메라 위치를 잡은 뒤 타이머를 작동시키거나 친구에게 셔터를 눌러달라고 부탁해 연작 사진을 완성했다. 사진 전공자가 아닌 만큼 테크닉이 뛰어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의 새로움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유명인사의 딸이라든가, 젊은 여인의 누드라든가 하는 흥미 위주의 관심은 전시장을 돌면서 금세 사라진다. 몸을 사리지 않는 작가의 뚝심과 대담한 도전에 감탄이 나온다. 짙은 어둠 속 높은 탑과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아찔한 다리 위에 그의 모습이 보인다. 파리의 지하묘지 카타콩브 안 수북하게 쌓인 인골 위에도, 서울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인 주택의 부서진 담과 필라델피아의 폐쇄된 발전소의 녹슨 기계 틈에서도….

부지런한 작가가 모험의 여정을 떠난 도시도 다양하다. 베를린 뉴욕 파리 필라델피아 서울 몬트리올 등.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에게도 잊혀진 외진 구석마다 그의 발자국이 또렷이 남아있을 터다. 사진에 곁들여 촬영 과정과 장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작가의 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장이나 수사를 절제한 문장이 사진과 어우러지며 울림을 빚어낸다. 작가의 담백한 언어 속에 녹록지 않은 사유가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폐허의 장소에서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읽어내는 이 작가. 그의 다음 작업이 궁금해진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동아닷컴 백완종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