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부터 1985년 청보 핀토스로 매각되기까지 팀 최다 실점, 시즌 최소 득점 등 화려한(?) 기록을 세웠던 ‘만년 꼴찌’ 팀 삼미 슈퍼스타즈. 사력을 다해도 남들만큼 사는 게 쉽지 않은 소시민들의 일상을 ‘프로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이 야구팀의 고군분투에 빗댔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소설가 박민규 씨가 이번엔 돈보다 외모가 더 큰 권력으로 군림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추녀에 대해 입을 뗐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모두가 기피하고, 무시하거나, 놀림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못생긴 여자와 운명적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돼 버린 한 남자를 다룬 ‘박민규 식 연애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인 ‘나’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되고, 부동산이며 증권이 비누 거품 일 듯 팽창했던 무렵이자, 저질 유머가 역시나 크게 히트한 무렵이다. 당시 주인공은 주중에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에는 소설을 습작하는 열아홉 살이었다.
아버지의 빼어난 외모를 물려받은 주인공과 누구나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못생긴 여자의 연애는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지만, 그는 정신적 지주인 요한의 도움으로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간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잡지 구독을 대신 신청해주기도 하고, 여자가 뜬 목도리 선물을 받기도 하고, 함께 비틀스의 노래를 듣기도 한다. 남들이 다 하는 비슷비슷한 연애 수순을 밟아나가며 주인공은 “갑자기 그럴듯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이자 “진행형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온 여자에게, 남자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여자는 자꾸만 도망치려 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 이들의 연애가 어떤 식의 결말을 맺을지는 마지막 반전을 볼 때까지 긴장하게 된다.
작가는 지나친 경쟁, 자본 중심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발한 입담과 소재로 형상화했던 것처럼 이번 역시 99%(평범한 사람들)가 1%(미인, 미남들)에게 소외당하는 현실을 극단적 상황의 연애 속에 녹여서 비판한다.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제인 오스틴이 말했듯 모든 “로맨스는 부자연스러운 시작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설정이야 어떻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렘과 서로에 대한 애틋함이 표정, 걷는 모습, 주변의 풍경 하나하나까지도 그려질 만큼 서정적으로 묘사됐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란 평범한 두 문장만으로도 작가는 가슴 서늘한 먹먹함을 끌어낸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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