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시 한번]로봇공학자가 만든 사랑의 공식

  • 입력 2009년 7월 4일 02시 52분


◇인간의 낭만적 교감의 본성에 대하여/칼 인옘마 지음·장호연 옮김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어떻게 될까. 손을 잡을 때의 열전도율과 입 맞출 때의 압력 수치를 계산하고, 상대에 대한 사랑을 벤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한다면? 공학자, 기하학자, 수학자 등 이성적(理性的)인 과학자들의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그린 이 책은 3년 전 이맘때 출간됐다.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작가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었다.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탐사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로봇 공학자다. 2003년 미국의 과학 잡지 ‘시드’는 그를 ‘올해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런 공학자가 과학소설도 아닌 연애소설을 썼다니 일단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호기심으로 살펴본 책은 뜻밖의 보석이었다.

표제작 ‘인간의 낭만적 교감의 본성에 대하여’를 비롯해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8편의 단편들에는 과학자로서의 체험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과학이라는 소재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낭만적 요소를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다. 자신의 사랑을 벤다이어그램으로 정연하게 나타낼 수는 있지만 정작 사랑하는 이의 마음은 알아내지 못하는 수학자,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태어나 처음으로 과학적 데이터가 아닌 날아가는 야구공에 결정을 맡기는 과학자 등 저자가 그려낸 과학자들의 모습은 묘한 공감과 재미를 줬다.

출간 전 모니터링 결과도 희망적이었다.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라는 데 대한 우려는 있었지만 작품이 가진 매력을 잘 알리면 승산이 있을 거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워너브러더스사가 표제작을 영화로 제작할 거라는 뉴스도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방식의 글쓰기는 기대만큼 독자들의 반응을 얻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 촬영도 보류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의 낭만적 교감의 본성에 대하여’라는 소설 제목 같지 않은 원제를 그대로 번역해 한글판 제목으로 삼은 것도 실패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지적이며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이 책의 특징을 잘 살려주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좀 더 낭만적인 제목을 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처럼 ‘낭만적이면서도 쓸쓸한’, 그리고 ‘묘한 여운이 있는’ 느낌을 잘 살리는 제목이었다면 어땠을까.

박묘원 책세상 편집2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