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형제는 동지였다…연극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사후엔 가장 비싼 화가가 됐지만 생전엔 지독히도 가난했던 불우한 예술가, 고갱과의 우정이 붕괴하자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다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광기의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 강렬한 작품 못지않게 비극적 생애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익숙한 고흐의 생애서 든든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와의 우애도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리나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우리, 테오와 빈센트 반 고흐’는 두 형제가 도플갱어를 연상시킬 정도로 기이하게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삶을 살았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프랑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장 므노 원작의 이 작품에는 빈센트(이호성)와 테오(이명호) 단 두 명의 배우만 출연한다. 두 배우는 1888년 2월 빈센트가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시점에서 1890년 7월 생을 마감할 때까지 2년여 간의 극적 사건과 내면의 격동을 마술처럼 펼쳐낸다.

빈센트보다 네 살 어린 테오는 형처럼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지만 불안한 형의 길이 아닌 안정적 화상(畵商)의 길을 택한다. 뛰어난 예술적 안목을 지닌 테오는 드가, 모네, 피사로와 같은 당대 인상파 화가와 우정을 나누지만 정작 돈은 ‘죽은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번다. 그는 자신의 꿈을 형 빈센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이런 괴리감을 극복하려 한다. 돈 한 푼 못 버는 형의 창작활동비와 생활비 일체는 모두 테오의 수입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부터 너와 난 같은 일을 해 나가는 거다. 넌 돈을 만들고, 난 그림을 만들고. 그러니 네가 하는 일이나 내가 하는 일이나 가치가 있다면 똑같이 있지”라는 빈센트의 말은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런 유대감은 둘의 삶이 엇갈리면서 흔들린다. 테오가 직업적 성공과 가정적 행복을 꾸려가는 동안 빈센트는 화가로서 좌절한 끝에 광기에 사로잡혀 정신요양원에서 생활한다.

같은 꿈, 다른 삶으로 엇갈린 형제의 삶은 다시 하나로 귀결된다. 형이 정신의 병을 앓는 동안 동생이 육체의 병에 시달린 것은 그 전조에 지나지 않는다. 형이 끝내 권총자살을 한 뒤 6개월 뒤 테오도 만성신장염의 후유증인 신체 마비로 34세에 요절한다.

예술적 동지이자 운명의 동반자였던 두 형제의 삶은 이 작품을 번역한 불문학자 오증자 씨와 연출가 임영웅 씨의 삶과 겹쳐지면서 더 진한 감동을 준다. 남편 임 씨가 가난한 연극활동을 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아내 오 씨이기 때문이다. 극단 산울림의 40주년을 기념하는 두 번째 공연. 28일까지. 02-334-591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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