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욕망은 늙지 않는다… 독일판 ‘죽어도 좋아’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노인의 성 다룬 영화 ‘우리도 사랑한다’

28일 개봉한 독일 영화 ‘우리도 사랑한다’(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는 여러 면에서 한국 영화 ‘죽어도 좋아’(2002년)를 떠올리게 한다. 금기와도 같았던 노년의 성(性)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그렇고 가감 없이 드러나는 파격 정사신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도…’는 두 노년의 애틋한 성을 다룬 ‘죽어도…’와 결을 달리하는 영화다. ‘죽어도…’가 불가능한 줄 알았던 성을 가능케 하는 사랑의 힘을 다뤘다면 ‘우리도…’는 조금 복잡하다. 욕망과 현실 사이의 고민, 여기에 극단으로 치닫는 삼각관계의 종말을 그렸다.

수선 일을 하는 60대 중반의 잉게(우르술라 베르너)에겐 30년 간 함께 살아온 남편 베르너(호르스테 레흐베르크)가 있다. 어느 날 잉게는 자신에게 바지 수선을 맡긴 76세 카를(호르스테 베스트팔)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도 잠시. 잉게는 정해진 철로를 달리는 기차 타기가 취미인 남편과 자전거를 타고 얼굴에 쏟아지는 바람 맞는 걸 좋아하는 카를을 두고 갈등에 빠진다. 두 남성은 다름 아닌 안정과 자유, 현실과 욕망의 상징이다. 결국 잉게는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부부는 갈등을 빚는다.

주인공의 연령대만 높아졌을 뿐 영화는 삼각관계를 다룬 여느 통속극과 다르지 않다. 마음보다 몸이 더 앞선 두 불륜 남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여자, 끊임없이 불륜 사실을 캐묻는 ‘희생자’ 남편….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고 캐릭터 또한 예측가능하다. 다른 점이라면 엄마의 뒤늦은 사랑에 대처하는 딸의 반응 정도일까. 딸은 “엄마 대단해, 삶은 그저 즐기는 거야”라며 엄마를 응원한다.

대신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 속에 그럴 듯한 현실감을 녹였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노인들의 정사 장면.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어떤 종류의 수줍은 섹스신도 원하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처럼 두 노인의 정사는 젊은이들처럼 격정적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절박해 보인다. 오직 서로의 육체를 탐하며 주름진 맨살을 보듬는 잉게와 카를을 보고 있으면 몸은 늙되, 욕망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제12회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2008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원제인 ‘볼케(Wolke) 9(영어 제목 ‘Cloud 9’)’은 단테의 ‘신곡’에서 따온 말로 천국에 이르는 9번째 계단, 즉 절정의 순간을 뜻한다. 18세 이상 관람 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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