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하여 20선]<18>서재 결혼 시키기

  • 입력 2009년 5월 25일 02시 51분


◇ 서재 결혼 시키기/앤 패디먼 지음·지호

《몇 달 전 남편과 나는 드디어 책을 한데 섞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안 지 10년, 함께 산 지 6년, 결혼한 지 5년 된 사이였다. 우리가 모은 레코드들은 이미 오래전에 무사히 서로 다른 종족 간 혼인에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의 책들은 계속 별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하나 되기’

결혼은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살던 남녀를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 놓는다. 사람만 결합하는 게 아니다. 남자가 쓰던 골프채가 공동의 공간으로 오고, 여자와 함께 살던 인형들이 단체로 이사 온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경우엔 어떨까.

이 책의 저자인 앤과 남편 조지는 처녀, 총각 시절부터 책읽기를 즐기던 사람들이다. 결혼을 하면서 각각 소장하고 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한곳에 모아두면 될 것을 두 사람은 5년씩이나 별도로 관리했다. 앤의 책은 아파트 북쪽 끝에, 조지의 책은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책의 결혼’이 성사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분류 방식의 차이였다. 조지는 ‘병합파’, 앤은 ‘세분파’다. 조지의 책은 뒤섞여 있었다. 어떤 책은 수직으로, 어떤 책은 수평으로, 심지어 어떤 책은 다른 책 뒤에 꽂혀 있기도 했다. 앤의 책들은 국적과 주제에 따라 구분돼 있었다.

앤은 “5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이까지 하나 낳은 뒤, 조지와 나는 마침내 우리가 장서 합병이라는 좀 더 깊은 수준의 친밀함을 이룰 준비가 됐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마침내 주제에 따라 정리하기로 합의를 봤고, 그렇게 해서 5년 만에 ‘서재 결혼시키기’가 진행됐다.

그러나 각각 오랜 습관에 길들어 있던 두 사람에게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지는 “영국 문학은 연대순으로, 미국 문학은 저자 이름순으로 정리한다”는 앤의 계획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꽂아야 한다는 앤의 주장에 조지는 “한 작가 내에서도 연대순으로 가잔 말이야”라며 폭발하고 말았다. 조지는 “앤과 결혼해 살면서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데 그때만은 달랐다”고 말했다.

이 책은 앤이 ‘책’과 ‘독서’를 주제로 쓴 에세이 18편을 묶은 것이다. 결혼을 직접 주제로 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편에 걸쳐서 결혼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막 연인이 됐을 때 처음으로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책이었다. 조지는 어니스트 시턴의 ‘회색 큰곰의 전기’를 선물하면서 ‘진정한 새 친구에게’라는 헌사를 썼다. 앤은 조지프 미첼의 책 ‘늙은 플러드 씨’에 ‘조지에게, 앤이 사랑으로’라는 글귀를 적어 선물했다.

앤의 마흔 두 번째 생일날. 조지는 앤을 멀리 교외에 있는 헌책방으로 데려갔다. 7시간 뒤 9kg의 책을 들고 나온 앤은 “헌책 9kg은 싱싱한 캐비아 1kg보다 적어도 9배는 더 맛있다”면서 “이제 내가 왜 조지와 결혼했는지 독자도 알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이처럼 이 부부에게 결혼의 기쁨을 더해 주는 소재다. 하지만 부부의 갈등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을 다루는 습관이 갈등의 대표적 원인이다. 책을 소중히 다루는 앤에게 습기로 인해 떨어지는 책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사우나에서 책을 읽는 조지는 이상한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통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결합은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많은 법. 앤은 말한다. “나의 남편 조지 하우 콜트와 나는 책으로 서로의 환심을 샀으며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와도 결혼을 했다. 내가 양쪽에서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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