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진성]서양原典번역 서둘러야 하는 이유

  • 입력 2009년 5월 23일 03시 00분


독일에서 보았던 하이데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4차례,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2차례 일본어로 번역됐는데 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6차례나 번역됐는지를 일본의 어느 교수가 다른 교수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1970년대에 방영한 내용인데 하이데거 사상이 당시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음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일본 학자들이 원전 번역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중역·편역에 허술한 학문토대

100년 전쯤에 이미 플라톤 전집을 내고, 1940년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완역해 놓은 일본. 우리나라는 전집은커녕 원전 완역본이 없는 철학 고전이 허다하다. 철학뿐만 아니라 종교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서양 고전 번역이 미미하다. 전반적으로 이제 시작 단계임을 볼 때 우리의 번역 작업은 일본에 2, 3세대는 뒤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전 완역이 중요하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원전 번역에서는 낱말 하나, 어구 하나 놓치지 않는 세심함과 성실성이 요구된다. 어떻게 하면 원전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지를 스스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중역이나 편역에서는 원전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빠뜨린 부분을 그대로 수용할 위험이 있고 원전의 이미지를 상업적인 의도에서 자의적으로 왜곡할 가능성이 많다.

고전 번역자는 소수의 손에 집중된 지식을 대중의 손에 전하는 구텐베르크의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알 권리를 대중에게 준다. 헤르메스가 신의 언어를 인간에게 알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듯이 고전 번역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시대와 공간을 넘어 제 나라의 말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원전에 대한 자기만족을 떠나 여러 사람에게 지적 만족을 전파하는 사람이다. 서구의 어설픈 모방에서 벗어나려면 원전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번역에 노력을 집중하여 고전이 되는 서양 원전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학문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는 생산적인 논의와 활용이 뒤따른다. 원전을 읽기 위해 모든 사람이 수년간에 걸쳐 원어 습득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명한 물리학자도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독일어 번역을 통해 접하면서 고대인의 원자론적 세계관을 극찬하지 않았던가.

뭐든지 직접 부딪쳐 보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번역을 하다 보니 예전에 알던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한다. 개론서 입문서 논문에서 고착된 용어 때문에 가끔은 번역 용어 선택이 힘든 상황에 부닥친다. 서양 고전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접했을 테다. 처음부터 본문의 내용을 접하고 제목이나 용어를 정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인데 요약되고 정리된 자료를 그대로 답습하다 보니 용어가 굳어져 헤어나기 힘들게 됐다.

일례로 최근 조그만 책을 번역하다 보니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명제가 갑자기 의심쩍어졌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성의 능력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지만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고치기로 했다. 인간은 이성의 능력이 있는 동물이다.

가을이면 늘 듣는 이브 몽탕의 ‘고엽’이란 노래 제목도 ‘지난날의 추억과 후회와 더불어 낙엽이 무수히 나뒹군다’는 가사의 일부를 알게 되면 ‘낙엽’으로 바꿔야 함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쓸쓸한 가을날 말라비틀어져 떨어져 바람에 나뒹구는 나뭇잎은 고엽이 아니라 낙엽이니까. 책 제목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연역적인 논리체계가 소개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에 맞서 새로운 학문의 방법을 제시한 베이컨의 ‘신 기관’도 본문을 읽다 보면 앞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손도 도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듯이, 지성도 도구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연역법이란 낡은 도구를 버리고 새로운 도구로 베이컨이 택한 것이 바로 실험과 관찰에 근거한 귀납법이다. 따라서 베이컨의 저술은 ‘새로운 도구’라 해야 한다. 위의 몇 가지 사례는 내용과 과정을 생략한 채 제목과 결과만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굳어진 말을 그대로 두면 익숙해서 편하긴 한데, 제목만으로는 노래나 책의 내용을 알 길이 없다. 번역을 하다 보면 이런 문제에 자주 부닥치게 되어 곤란을 겪는다.

‘필생의 과업’ 체계적 지원을

우리에게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중 하나가 서양 고전의 제대로 된 번역이다. 최근에 그리스 비극 전집, 플라톤 전집, 칸트 3대 비판서, 니체 전집, 베냐민 전집 등 서양 고전의 원전 번역이 이뤄지고 체계적으로 시도된다. 적게는 5∼10년에서 많게는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면서 원전 번역 작업에 매달리는 학자와 연구단체의 열기가 나에게도 전달된다. 고전을 직접 접할 수 없는 독자에게 우리말로 재탄생시켜 지적 만족을 제공하려 고군분투하는 번역자에 대한 세심하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김진성 정암학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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