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꼭 이 무대에…” 老배우들 ‘감격 대사’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6월 5일 개관하는 명동예술극장이 11일 오후 연극인 350여 명을 초청하는 ‘연극인 집들이’ 행사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진태 윤석화 윤복희 최은희 강부자 김정옥(연출가) 김금지 강태기 씨. 변영욱 기자
6월 5일 개관하는 명동예술극장이 11일 오후 연극인 350여 명을 초청하는 ‘연극인 집들이’ 행사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진태 윤석화 윤복희 최은희 강부자 김정옥(연출가) 김금지 강태기 씨. 변영욱 기자
6월 5일 재개관을 앞둔 서울 명동예술극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6월 5일 재개관을 앞둔 서울 명동예술극장.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명동예술극장 34년만의 재개관 앞두고 ‘집들이’

가난하지만 치열했던 시절, 꿈을 키워준 집과 같은곳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초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빗줄기가 쏟아진 11일. 서울 중구 명동1가 54 명동예술극장에는 극장의 전설을 기억하는 수많은 노장이 모여들었다. 명동예술극장의 부활을 축하하는 연극인 집들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이 극장은 추억이었고, 사랑이었고 그리고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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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미약했다. 1934년 일제강점기 도쿄에 세워진 건물을 모방해 세워진 이 공간은 명치좌(明治座)란 이름의 영화관이었다. 광복 이후 1973년까지 28년간 이곳은 한국공연예술의 심장부가 되면서 명동을 뮤즈의 본고장으로 바꿔 놨다. 1961년까지는 서울시공관이란 이름으로, 이어 1973년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생기기 전까지 국립극장으로 예술과 낭만을 상징하는 명동의 대표명사였다. 그러나 1975년 명동극장은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됨과 동시에 1970년대 고도성장의 그늘 속에 명동은 예술의 심장부에서 쇼핑의 천국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명동예술극장이 새로운 심장으로 부활했고 전설은 다시 현실이 됐다.

이날 연극인 집들이의 문을 연 원로배우 장민호 씨는 “이런 경사스러운 날이 올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독백으로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집들이에선 수많은 연극인이 명동극장과 추억을 더듬으며 명대사로 축사를 대신했다.

6월 5일 개막하는 ‘맹진사댁 경사’에 깜짝 출연하는 원로 영화배우 최은희 씨는 같은 연극의 여주인공 이쁜이의 대사를 읊은 뒤 “다음엔 주연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원로배우 김길호 씨는 “내가 다른 무대는 다 서봤는데 유독 명동극장에만 서보지 못했는데 내 죽기 전에 꼭 이 무대에 서겠다”는 말로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배우 강부자 씨는 “공연 직전 대사를 다 못 외워 극장으로 오면서 저 택시에 치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고, 간호사들이 단체관람을 왔다고 하면 흰 시트를 입힌 객석이 텅 빈 것을 뜻했다”며 가난했지만 치열했던 명동극장 시절을 회상했다. 가수 윤복희 씨는 “어린 시절 명동극장은 밥 먹고 잠자는 내 집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즉석에서 1953년 7세 때 명동극장에서 주역을 맡았던 단막극 ‘슈샤인 보이’에 등장했던 노래를 앳된 목소리로 불러 노배우들을 기쁘게 했다.

원로배우 권성덕 씨는 “여자는 품에 꼭 안길 때, 극장은 객석이 배우의 품에 꼭 안길 때 최고라고 하던데 새로 지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서보니 객석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아주 아담하고 푸근해서 좋다”며 연극배우의 길을 열어준 명동극장과의 인연을 말했다. 배우 정동환 씨는 “신념! 당연히 연극이지. 영원히 죽지 않을 유일한 종교거든. 지금은 삭아버린 불덩이처럼 침묵 중이지만. 오래전 연극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때 이곳에서도 그리스만큼이나 우리들에게 신념과 경이로움을 심어줬어. 종교처럼 말이야”라며 자신이 출연한 연극 ‘고곤의 선물’의 명대사로 명동의 추억을 되살려냈다. 그는 이어 “언젠가는 새로운 사도들에 의해 연극이 다시 활활 타오를 거란 말이야.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그 사도들 중에 내가 있을 거야!”라며 제2의 명동극장을 맞는 연극인들의 희망을 대변했다.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 옛날 예술가들은 (명동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나 없는 날이나 일번지다방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은성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는데 그 중심에 명동국립극장이 있었다”며 “선배 연극인들이 이뤄놓은 전통을 이어 한국 연극의 미래를 착실하게 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연극배우 출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명동예술극장이 문을 여는 이 시점을 계기로 우리 연극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도록 새로운 구상을 준비 중”이라며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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