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마르크스를 부활시켰다"

  • 입력 2009년 4월 21일 18시 55분


요즘 독일의 서점에서는 칼 맑스의 '자본론'이 다시 인기다. 독일의 한 출판사는 지난해 1000권 이상의 자본론을 판매해 전년보다 10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중국에서는 자본론을 연극으로 만드는 준비가 한창이고 일본에서는 공산당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칼 맑스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그의 이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 최신호는 "맑스가 부활하고 있다"며 배경을 분석했다.

맑스는 1867년에 이미 '자본론' 등의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단을 통렬히 지적했다. 자본주의 팽창이 가져올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도 오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금융위기 앞에 동분서주하는 월가(街)의 금융인들은 그가 '공산당선언'에서 언급한 부르주아 계급을 연상시킨다.

맑스는 "노동자 계급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냉정한 계산과 벌거벗은 이해관계만 남기고 인간 관계를 끊어버린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동자 소외론은 최근 노조의 영향력 감소와 고용, 사회복지 시스템 약화 등을 통해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더구나 금융시장의 거품과 파생상품의 변동성, 거대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가져오는 위험성 등은 시장 충격을 증폭시키고 있다. 무력화된 개인들이 맑스의 말처럼 '단결'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연봉 제한 등 사회주의적인 각종 정책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맑스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영국의 윌렘 뷰터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금융회사를 전부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유화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경제위기의 주요 해법은 여전히 자본주의적이다.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파생상품과 신용 거래를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맑스의 부활을 분석한 캐나다 요크대의 레오 파니치 교수는 "맑스가 살아있다면 현재의 현상들을 모두 자본주의의 역동성 속에서 설명했을 것"이라며 "그는 평등을 부르짖는 지금의 개혁파 정치인들보다는 더 현실주의자"라고 평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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