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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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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가을 와인 애호가들은 탄성을 질렀다. 여름 가뭄 덕분에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최고 품질의 빈티지(vintage·생산연도) 와인이 나왔다는 비평가들의 찬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보르도 고급와인 가격은 2, 3배 뛰어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는 한 병에 2000달러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하지만 같은 해 지명도가 낮은 보르도의 생산자들이 만든 와인 1800만 L는 증류처리장에 헐값에 팔려나가 자동차 연료첨가물인 에탄올로 바뀌는 신세를 맞았다. 1995년 1만5000곳에 이르던 포도농장은 2005년 1만 곳으로 줄었다. 생산 과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보르도 와인의 처지가 비참하게 됐다.
미국 뉴욕대와 시카고대에서 와인 강의를 하는 저자는 전통의 와인 생산지인 프랑스와 신대륙의 강자로 떠오른 미국의 사례를 들어 와인을 둘러싼 정책과 갈등의 문제를 다룬다.
20세기 초 샹파뉴와 보르도에서는 ‘와인 사기’가 성행했다. 일부에서 프랑스의 다른 지역이나 알제리에서 들여온 값싼 와인에 고급와인 산지인 보르도나 샹파뉴의 와인을 섞거나 아예 100% 다른 지역의 와인에 ‘보르도산’ ‘샹파뉴산’이라는 라벨을 붙여 판매했다. 샹파뉴와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철시킨 정책이 와인 출처에 대한 법적 규정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해당 지역의 라벨을 붙이기 위해선 원산지 포도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한 조치였다. 1980년부터 미국에도 유사한 제도(AVA)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새로운 와인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은 와인산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1920년 선포돼 주별로 1960년대까지 이어진 금주령의 잔재가 남아 있는 나라다. 지금도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제프가 캘리포니아 소노마의 와이너리에 와인을 주문해 배송받는 것은 유통독점법에 저촉된다. 금주령 이후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주들은 와인 생산을 진작시키지 않았고 와인 유통도 통제했다. 저자는 미사 때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와 달리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 와인은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절제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볼 때 와인산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파커 점수’다. ‘절대적 와인권력’으로까지 불리는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평가를 말한다. 아침마다 사무실에서 1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하며 점수를 매기는 게 과연 공정한지, 개인에 따라 같은 와인에 대한 맛이 다른데도 파커 점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행태가 옳은지 따진다. 파커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와인을 팔기 어려운 상황에서 생산자들이 파커의 입맛에 맞는 와인만 생산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와인 생산자들이 파커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가장 잘 만든다고 정평이 나 있는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에게 거금을 주고 와인을 만드는 게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2005년 맨해튼에 문을 연 ‘크러시 와인 앤드 스피릿’과 같이 ‘파커 점수’를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판매자들이 늘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책에는 포도 재배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환경보호론자들의 비판과 그에 대응해 친환경적인 와인 생산을 지향하는 움직임도 담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