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진실은 일상 통해 더 뚜렷해져”

  • 입력 2009년 4월 6일 02시 53분


일상사 연구 세계적 석학 알프 뤼트케 獨 에르푸르트大 명예교수

“나치체제 독일인들도 때론 타협
희생-가해자 잘라 말할수 없어

계급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
일상연구는 동질성 해체작업”

“국가와 계급으로는 볼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 일상을 통해 드러납니다.”

1970년대 말 독일에서 거대 담론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일상사(생활사·History of Everyday Life)에 초점을 맞춘 연구 방법론이 제기됐다. 이 연구는 1980∼90년대를 거치며 역사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손꼽히는 알프 뤼트케 독일 에르푸르트대 명예교수(66)가 한국과학재단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프로그램으로 이번 학기 한양대 사학과에서 강의하기 위해 내한했다. 그를 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숙소에서 만났다.

일상사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30여 년 전 독일 현대 사회학의 거장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에게서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며 웃었다.

“일상은 인간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사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실 일상이 아닌 것이 없지요. 격변도 결국 일상에서 일어나니까요. 그런 일상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방식이 일상사 연구입니다.”

그는 일상사 연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나치 체제의 ‘회색지대’를 예로 들었다. 당시 독일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일방적으로 조종당하거나 저항한 게 아니라 때로 타협하고 협력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나치 체제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협력과 타협이 이뤄지는 회색지대가 존재했다”며 “나치 독일에서 누구는 전적으로 희생자였고, 누구는 가해자였다고 잘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설명이 당시 나치 체제에 협력했던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뤼트케 교수는 정색을 하며 반박했다. 그는 “그런 비판을 인정할 수 없다. 오히려 일상사 연구 방법으로 독재 체제를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혹독한 비판”이라며 “독재가 위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면 통치자의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시민들의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론하게 되면 훨씬 더 강한 자기비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를 비롯한 국내 학자들과 교류해 온 그는 한국 학계에서 계급과 이념이 아닌 일상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려는 동향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계급 개념은 (그 테두리 안의 사람들에게) 매우 동질적인 것이 있다고 전제하지만 실제 그 안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차이가 있습니다. 일상사 연구가 그 점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른바 역사 개념의 동질성을 해체하려는 작업이지요.”

그는 10일 한양대에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일상사’라는 주제로 첫 강의를 한다. 이 주제에는 일상사 연구자라 하더라도 민족적인 색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학자들 간의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하자는 의미가 있다.

그는 임 교수가 이끄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대중독재’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한국 사례로 트랜스내셔널 일상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독일인인 내게 대중이라는 개념은 히틀러 등 독재자에 의해 ‘조작의 대상’이 되거나 ‘의지 없는 객체’로 오용되고, 다른 한편에서 좌파에 의해 독재에서 인류를 구원할 해방의 주역으로 이념화된 것으로 각인됐습니다. 그런데 한국 학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도 대중이 독재를 분석하는 개념으로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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